나만의 공부법을 찾으면 공부가 즐겁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자기공부법이 있다

인간의 삶은 생애주기에 따라 진행된다. 인간은 약 100년의 생애주기 시스템이 있다. 누구든지 출생-유아기-유년기-소년기-청년기-장년기- 노년기 -죽음에 이르는 인생여정 과정을 따라간다. 사람마다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같은 과정을 거친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공부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인다.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공부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이해하고 그것을 따라 하면 된다.

실제로 공부잘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의 공부법이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공부 시스템을 갖지 않고 아무 방법 없이 그냥 공부를 한다. 그러나 공부 시스템을 알고 공부를 하면 공부가 쉽고 즐겁다. 점점 가속도가 붙으면서 공부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한번 공부 시스템을 몸에 체득하면 평생동안 공부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다.

공부에도 시스템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 공부시스템을 가지지 못했다. “공부에 무슨 시스템이 필요한가? 그냥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무슨 공부법인가?” 하면서 지내왔다. 부모들과 어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열심히 공부 해”. 그래서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지만 공부가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공부잔소리를 수없이 듣지만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공부는 더 하기 싫다. 이상한 것은 공부를 하라고 그렇게 수없이 말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공부를 하는지 가르쳐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공부법

학교에서도. 부모도 자세한 공부법을 가르쳐주지 않고 오직 “공부하라”고만 말한다.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답답할 뿐이다. 마음을 잡고 책을 들여다보지만 이해가 힘들고, 열심히 학교공부를 따라 가려고 하지만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럴수록 자신에 대해 짜증이 더 난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면 공부가 즐거울 리 없다. 지겨운 공부를 과연 계속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머리 탓을 하거나, 자책하면서 스스로 고민에 빠지게 된다.

교육의 문제는 공부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우리가 고민하는 교육의 문제는 많은 부분에서 해결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교육은 공부문제요, 공부는 자신의 공부법을 얼마나 터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한번 터득하면 평생가는 공부법이 없을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이것은 누구나 관심을 갖는 주제다. 그래서 수많은 공부의 신(?)들이 자신의 특별한 공부 비법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공부법은 어느 한 특별한 사람이 경험한 개인적인 공부법이기에 배경과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대로 사용해 보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더 좋은 공부법들을 계속 찾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런 공부법들은 겨우 학과점수를 올리거나 우리나라 유명 대학이나 미국 대학에 좋은 점수로 들어갔다는 정도의 지식 공부법에 머무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어느 정도 도움을 얻을 수 있지만 사람의 공부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누구나 적용할 수 있고, 온 국민이 사용할 수 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평생 적용할 수 있고. 자손대대로 전수가 가능한 수천 년 동안 사용할수 있는 공부기 이제는 필요하다
공부는 나의 인생 무기를 갖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6가지 특징

왜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본질성

이야기는 “가공되지 않은 원 재료”와 같다. 이야기를 한다 함은 본래적인 것을 다시 복원하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본질적인 것을 드러내준다 . 이야기는 그 이야기 자체가 가지는 힘이 있다. 특별하게 주석이나 교훈을 덧붙이지 않아도 그 자체가 교훈을 지닌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되고 교훈을 준다. 이야기 안에는 무한한 것들이 숨어 있다. 만약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인간이 내용을 구조화시키면 그것은 가공된 것으로  본래적인 맛을 상실하고 그것으로 원래의 것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이야기는 이야기로서 전해져야 한다. 그 이야기안에는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숨어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본질성이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 자체가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편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중심성

이야기는 의사소통(communication)을 위해 가장 널리 사용되어온 매체이다. 이야기는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도와주며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하는데 큰 효과를 준다.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거의가 이야기로 채워져 왔고, 계속적으로 이야기에 의해서 아름답게 만들어져 가고 있다. 강의나 설교와 다르게 누구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이야기하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며 또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의 역사는 알고 보면 이야기의 역사이다. 이러 저런 이야기를 통하여 역사가 만들어지고 들려진 이야기는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야기라는 말만 들어도 갑자기 흥미가 생기며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가 된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슬픔과 기쁨, 고통과 환희, 절망과 희망,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에 올리고 그 이야기를 서로 나누면서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가운데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깊은 감정들을 치유하고 승화시킨다.
이야기는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한번 이야기가 시작되면 그 이야기 속에 몰입되며, 이야기와 함께 웃고, 울고, 공감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일이 아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나 그 이야기를 듣0는 사람 할 것 없이 서로 하나되는 경험을 하고 그 이야기 속에 서로 빠져들게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사람들은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서로간에 깊은 사랑을 느끼고 멀어졌던 사이가 가까워지면서 이야기를 통하여 놀라운 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이야기속에 담겨진 사건의 내용을 말하고 듣는 가운데 우리는 또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삶속에서 경험(experience)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이야기의 문화에 젖어 있는 민족이다. 어릴 때 “옛날 옛날에 ….”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던 할머니의 모습들이 생각난다.
놀라운 상상의 날개를 펴서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도전하며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어린시절의 경험은 누구든지 한두번 쯤 있을 것이다.
이런면에서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에 중심에 있다고 할수 있다.

보편성

이야기는 시대와 지역과 문화를 초월 하여 모두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어린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세대를 묶어 주고 성별과 민족과 문화를 하나로
통합하며 평등하게 한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듣거나 어떤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세계와 경험을 체험하게 하며 그 이야기를 통하여 새로운 내가 태어나는 놀라운 신비를 가지고 있다.
또 이야기는 누구나 쉽게 알아듣고 이해를 하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안들은 사람과 다르게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며 하나됨을 느끼게 된다. 아는 이야기를 들을 때 왠지 모르게 동질감을 빨리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야기를 통하여 한 공동체성을 느끼며 공감하는 부분을 통하여 새로운 연대감을 가지게 된다. 이야기는 현재 들려지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과거의 이야기를 기억하게 되고 아울러 현재의 시간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시간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하여 과거 . 현재 . 미래가 하나로 통합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상상성

사람들은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이야기를 듣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는 놀라운 상상력을 펼수 있다.이것은 어린이 뿐 아니라 어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강의를 듣는 것과 이야기를 듣는 것은 차이가 있다. 강의는 그냥 주입식으로 지식적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머리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그림을 머리속에 그릴려면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 자연히 상상력이 계발된다. 이야기를 들으면 상상의 날개를 펴서 아주다양한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닐수 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수 있고 내가 그리고 싶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심지어 사람이 아닌 물체와도 이야기가 가능하다. 그냥은 갈수 없는 천국에까지 가서 성경의 위인들을 상상력으로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상상력이 주는 유익이며 즐거움이다. 사람들은 종종 이런 상상의 세계를 꿈꾸며 그런 세계에 살기를 소원한다.

창의성

이야기는 창의성을 높혀준다.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들었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새롭게 창조해 낼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나의 이야기를 만든다. 그런 이야기가 나의 현실에 나타나기를 꿈꾼다.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
동화나 소설을 많이 읽으면서 나에게 창의력이 개발된다. 그리고 어느때인가 나도 그런 소설을 쓰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그것은 그런 이야기를 통하여 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아니면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순간에 내가 주인공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결할 때가 있다. 그것은 이미 이야기를 통하여 내가 창의적인 상황에 새롭게 들어간 것이다. 이야기는 나에게 새롭게 생각할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새로운 것을 꿈 꾼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그래도 공부만한 것이 없다

교육이 살아나면 다 살아난다

한 나라의 장래는 교육에 달려 있다. 교육이 무너지면 모두 무너진다. 그래도 우리 나라가 이만큼 경제 부흥을 이루면서 선진국으로 단기간에 일어설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교육에 있다. 남다른 교육 열정이 우리나라를 세운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육의 잘못된 열정과 빗나간 방향 설정으로 오히려 교육을 도구로 이기적이며 병든 사회로 치닫고 있다.

작지만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교육에 집중해야 하고 좋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작은 민족인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 때문이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런 원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작은 나라들이 많이 있다.

인구가 고작 520만 명에 불과한 핀란드는 극심한 기후에 언어도 지구상에서 다른 어떤 곳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외진 나라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밀어내고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고, 또한 1990년대초 경제 위기를 겪었으나 21세기초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경제국가로 부상한 비결은 바로 교육이다.

뉴욕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파보 리포넨 핀란드 총리가 “두뇌의 힘과 기술에 투자하고 포용력 있고 개방적인 사회를 창출했기 때문이며, 핀란드는 자원을 토대로 한 경제에서 지식에 기반을 둔 경제로 발전했으며 이는 교육의 결과이자 연구ㆍ개발 분야에 집중 투자한 결과”라고 말한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핀란드와 같은 작은 나라인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국토의 3분의 2 이상이 산지인데다 변변한 자원도 없는 나라여서 ‘사람’을 키우지 않고는 먹고살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판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외 비슷한 환경을 가진, 역시 작은 나라로 알려진 아일랜드, 스위스, 싱가폴, 네덜란드가 세계화 수준에서 경쟁력 1- 4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의 경쟁력은 두말할 것도 없이 지정학적 위치를 충분히 이용할 줄 아는 지혜, 질서를 지키는 국민, 그리고 경쟁력의 바탕이 되는 엘리트 교육에 그 핵심이 있다.

이런 나라들과 비교하여 볼 때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자원이 부족한 작은 나라인 한국이 중요하게 집중해야 하는 과제는 사람이다. 사람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교육으로 튼튼하게 세우는 길이다. 이런 교육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문제는 그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혼란 스러워 하고 있다.

“교육에 대한 명쾌한 해법은 없을까?”
“사람을 살리는 교육이 될 수 없을까?”

국가는 조직이지만 조직이 아니다. 각 한 사람이 모여 이루는 총체다. 국민 한 사람이 중요하다. 국민 한 사람이 건강하고 지혜롭게 되면 국가는 자연히 강성대국이 된다. 그것을 위해서는 국민 한 사람을 교육하는 일이 필요하다. 어떤 외부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 한 사람을 교육으로 개조하는 일이다. 그런데 왜 그일이 잘 안될까? 필자가 제안하는 중요성에 거의 공감하지만 실제는 이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교육에서 공부로 전환이 일어나지 않아서다. 교육은 교사 입장이라면 공부는 배우는 학생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교육은 주입식으로 강의하고 설득하는 것이라면 공부는 스스로 배우는 자기 주도 학습의 의미가 있다.

이제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을 넘어 공부다. 스스로 공부하도록 돕는 전국민 공부 시스템이 필요하다. 좋은 방안을 제시하고 국민들이 하나 둘씩 공감하며 동참하도록 하는 일이 이루어진다면 머지 않아 한국인도 공부하는 국가로서 지금보다 우뚝서는 일이 생길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아직 이렇다 할 공부가 없다. 누구에게 제시할 공부에 대한 정리가 안되다 보니
부모나 대부분 학교공부가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며 30세 이후에는 공부에서 거의 손을 뗀다. 막상 공부하고 싶어도 무엇을 공부할지 모르는 상황이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모두가 공부할수 있는 방향과 그것에 대한 실제 공부 매뉴얼을 제시하여 스스로 공부를 하도록 안내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이것을 목표로 집필되었다.

출구를 찾기 어려운 공부,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사회에서 가장 관심이 많으면서도, 가장 해결이 힘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교육이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처럼 자주 바뀌는 것도 없다. 그것은 그만큼 문제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 때문에 힘들어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좋은 교육정책이 나와야 하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사실 교육문제만 해결이 되어도 따돌림, 사교육비, 저출산, 가정경제, 일자리창출, 자살률, 1인 가족. 이혼, 창업. 가족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저절로 해결이 된다. 교육은 나라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정책과제이지만 지금까지 아직 마땅한 묘책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현재 우리 학교공부 환경을 돌아보면 공부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학교에서 대부분의 교사는 과정을 잘 따라오는 아이들 중심으로 공부를 진행한다. 이것이 학교와 교사입장에서 당장 편하다. 잘하는 아이 중심으로 성적을 올리면 학교 위상이 올라간다. 상위대학에 몇 명 들어갔느냐에 따라 학교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차피 안 되는 아이는 시간 만 보내다가 졸업시키면 된다. 실제로 70-80%는 이렇게 소외된 상태에서 학교에서 시간만 보낸다. 그러다 보니 뒤처지는 아이는 학교 몫이 아닌 부모 몫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는 당연히 학원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효과없는 사교육에 왜 그렇게 목을 맬까?

이것이 우리나라 사교육이 번성하는 구조적인 이유다. 그렇다고 학원을 보내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 공부가 안 되는 아이는 학원을 가도 큰 효과가 없다.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등이 학생들의 공부를 책임져 준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임시방편일 뿐이다. 대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자기만의 공부법을 터득하여 공부한다. 학교나 학원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기스스로 공부한다. 이렇게 공부하는 1-2%의 학생들 이외는 대부분 자기 주도적 공부를 하지 못하고 학원이나 과외나 인터넷 강의에 의존하며 겨우 진도를 따라가는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교사와 부모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그냥 시류에 따라간다. 부모들이 자녀 공부를 위해 수많은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지만 그것에 대한 효과는 미미하다. 그래서 유학을 생각하거나 홈스쿨링이나 대안 학교를 보내기도 하지만 역시 그것도 쉽지 않은 모험이다.

모든 부모는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를 원한다. 자녀들 역시 공부를 잘해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갈수록 더해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앞길은 더욱 희미해질 뿐이다.

평생 따라 다니는 공부. 해결책이 없을까?

지금도 해결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길을 방황하는 부모와 학교생활에 부적응 자녀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런 답답한 과정을 그대로 겪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더 큰 문제는 학교를 졸업했다고 공부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공부는 평생해야 하는 필연의 과제다.

공부는 피할수 없는 인생의 문제다.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가정을 이루고 직장을 다닌다고 해서 공부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학교공부보다 더 어려운 치열한 인생 공부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세상과 인생 공부를 경험한 사람은 그대로 학교 공부가 쉽다는 결론을 늦게야 갖게 된다. 흔히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도 이런 점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어차피 죽을때까지 공부해야 한다면?

이렇게 보면 공부는 어느 한 개인이나 특수한 학생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민의 문제다. 잠시 학교생활로 마치는 것이 아닌 죽는 순간까지 공부해야 하는 평생의 문제다. 공부는 학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그것이 평생공부와 인생공부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피할수 없다면 즐겨라. 가능한 하루 빨리 즐거운 공부를 터득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사랑의 방법은 무엇일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사랑의 방법은 말씀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장 소중한 생명을 심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사라져도 어릴 때 심어준 말씀은 그를 영원히 지켜 준다. 히브리어로 교사는 모림(Molim) 이라고 하고 부모는 호림(Holim) 이라고 한다. 이 단어는 서로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단어들은 가르치는 것과 목표물을 향해 쏘는 것을 말한다. 부모는 곧 교사를 의미한다. 우리는 부모가 먹고 입고 재워주는 역할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교사의 임무가 더 중요하다. 부모에게 준 큰 임무는 성경을 자녀에게 잘 가르치고 전수하는 일이다

유대인들은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음식물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는 것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조상 대대로 물려 받은 성경을 가르치며 신앙을 전수하는 일이다. 유대인 아버지는 거의 매일 저녁,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친다. 안식일에는 꼭 성경을 가르친다. 안식일에 자녀에게 30분 이상 시간을 내어서 성경을 가르친다. 손님 때문에 이런 아버지의 의미를 미루거나 거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손님이 왔다고 해서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시간을 양보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성경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것은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생각한다.

만약 부모가 성경을 자녀에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가 성경을 가르치는 일은 자녀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전해줄 최고의 사랑이 아닐까? 성경은 지식과 정보의 책이 아닌 사랑의 책이다. 누구든지 성경을 읽고 공부하면 사랑의 사람이 된다. 자녀를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게 하라. 왜냐하면 성경은 사랑으로 가득찬 책이기 때문이다,



최고 교육은 사랑이다



사회가 양극화 되고 빈곤한 이유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의 특징은 사랑이 부족하다. 충분한 자원과 물질이 있는데도 그것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지도층이나 부자와 교육을 받은 지식층이 모두 독차지 하고 있다. 그런 나라는 부패가 심하고 빈부

귀천이 크다. 반면에 선진국은 사회복지 제도가 잘되어 있다. 함께 사랑을 나누는 국가 시스템이 잘 형성 되었다. 식량학자들은 세계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누지 못해서 기아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세계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는 물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그것을 나누지 못함으로 기아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왜 함께 나누는 사회가 되지 못할까? 그것은 사랑이 부족해서이다. 지도자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가진 자들이 부를 축적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나라를 통치하면 결국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지도자들이 왜 이렇게 부패 되는가?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사랑의 결핍이 부정과 부패를 만든다. 이것은 사랑의 교육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면 나만 부와 권력을 독점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교육이 필요한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다. 교육을 통해 사랑의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지금의 사회적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Tip 사랑은?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인내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사랑은 진실하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다
-사랑은 타인을 소중한 존재로 존중하는 것이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것이다
-사랑은 잘못을 하더라도 책망하지 않고 용서하는 것이다
-사랑은 속이지 않고 정직이 행하는 것이다
-사랑은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것에 헌신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유대인 교육을 주목해야 하는가?

유대인 교육은 원리에 따른 교육이다


유대인이 교육의 민족으로 세계에서 두각을 발휘하게 된 근본 이유는 방법이 아닌 원리에 있다. 그들은 교육의 교과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수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교육교과서인 토라와 탈무드가 있다. 탈무드 역시 성경을 원리로 하여 만든 교육서이다. 유대인의 모든 교육은 이것을 근간으로 한다. 물론 학교 뿐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토라는 모세오경으로 이야기와 가르침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가르침의 책이다. 토라는 본래 권위적인 가르침, 지침을 가리킨다. 우리로 말하면 길. 도(道)라는 뜻이다. 토라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말씀이 쉐마다. 쉐마는 ‘들으라’는 의미로 신명기 6;4-9까지 내용이다.

이것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해야 할 도리는 하나님을 전인적으로 사랑하는 일이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과 자신의 자녀에게 해야 할 도리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다. 유대인 교육은 이 세 가지를 원리로 해서 교육과정이 구성되었다. 쉐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반복하여 이 말씀을 암송한다. 그들은 평생 동안 쉐마를 통하여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기억하면서 교육에 임한다. 유대인의 모든 공부와 교육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시적이고 실용적인 교육 보다 인간의 도리를 먼저 가르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한다. 방법은 변하지만 원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유대인 교육은 원리에 충실한 교육이다.


토라(성경)는 모든 교육의 원리다


교육은 창조적인 작업이다. 인간이 교육을 받으면 창조적인 사람이 된다. 이것이 인간에게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에 근거를 둔 재창조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모든 지식들은 알고 보면 하나님의 창조에서 재발견된 것들이다. 만약 하나님을 모른다면 그 교육은 헛된 것이 된다. 뿌리 없는 교육이 될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가 기록된 책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이 이끌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기록된 책이 성경이다. 세상의 모든 원리는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은 모든 교육의 원리가 된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의 책 이상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종교적인 경전정도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교육의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세상과 인간의 뿌리를 알려면 성경은 필수적이다. 성경 속에는 어느 책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세상과 인생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교육 원리로 근간을 삼으라


성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로 안내한다. 진리를 공부하는 것은 교육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경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사상이나 철학이 교육의 주체가 되면 안된다. 사상이나 철학이 주도하면 인간의 인성 보다는 철학과 사상으로 만들어진 이념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세상과 사람은 본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말씀으로 창조된 사람의 변화는 오직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이 모든 교육의 시작이 성경이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말씀은 히브리어로 ‘다바르(dabar)’ 이다. 이 뜻은 “나중에 있는 것을 이전으로 쫓아내고 몰아버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바르’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 행위적인 것을 포함한다. 또 ‘다바르’ 는 “창조능력”, “사건”이라는 의미와 함께 “ 모든 것의 근원” 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창조의 힘은 곧 말씀입니다. 말씀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성경을 뿌리로 삼는 것은 교육의 시작을 하나님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을 뿌리로 하는 교육


일반교육은 성경이 아닌 자연을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은 물질이다. 그들은 인간을 자연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 일반 교육에서 자연은 인간 보다 늘 앞서 있다. 예를 들면 우주와 물질을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고 교육을 한다. 인간은 자연의 부산물로 본다. 그러나 자연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밝히지 못한다. 빅뱅 이전의 일에는 침묵하고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은 자연을 모든 것의 시작으로 보고 가르친다. 어떤 경우는 자연을 신이라고 말한다. 고대부터 신을 해.달,별등과 관련시켜 이해한 것도 이런 맥락과 같이 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의 지배속에 있었다. 인간이 동물보다는 고등하지만 늘 자연 보다는 한수 아래로 본다. 이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의 기본 틀이다. 이런 교육론은 루소의 <에밀>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에밀의 교육론의 문제점


지금도 루소의 교육론은 우리 교육론의 근간이 되고 있는 명저다. 하나의 소설형식으로 쓴 <에밀>은 교육론이다. 그는 여기서 자연. 사물. 인간의 세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자연의 교육‘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불행하게 된 것은 사회나 제도와 문화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보았고 이것을 교육에 적용했다. 그러나 루소는 인간의 본질을 잘 못 이해했다. 루소는 인간의 죄악의 원인을 인간이 자연에서 떠난 것으로 보았다. 이런 그의 가설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인간이 타락하고 부패한 것은 자연을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죄악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루소의 한계는 어쩌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 온 것은 인간이 스스로 근원임을 주장한 교만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교만함은 모든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일반교육에서 사용하는 자연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연은 이러한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자기를 깨닫는 어느 정도 완화의 기능은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마음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이 산속에 들어가서 산다고 해서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다. 산속에 있을 때는 조금 완화가 되는 듯하지만 세상에 내려오면 그 본성은 어느새 다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볼 때도 문제성 있는 교육 이론이다. 종종 사람들은 루소의 자연 교육론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이런 교육론을 주창한 루소 본인 자신조차도 실상 자녀를 고아원에 보내는 등 실패한 교육을 했다. 루소의 비인간적인 이중성은 그의 사생활에서 드러났다. 많은 여성들과 동거하면서 결혼생활은 실패했다. 만년에는 피해망상증으로 괴로워 하다가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본인에게 숨겨진 죄악성을 해결하지 못했다. 자연이 그를 성적인 욕망에서 자유롭게 해주지 못했다. 그가 주장한 교육론은 인성에서는 실패한 교육 이론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루소의 교육론은 인간의 부패한 마음과 욕망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악한 지, 루소 스스로 후대의 사람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 이런 허상과 같은 교육론을 우리는 여전히 교육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교육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근원은 해결되지 않고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토라 성경을 뿌리로 하는 원형교육이 필요하다


성경은 세상에서 밝히지 못하는 자연의 근원을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자연은 말씀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 창1:3) 그동안 세상 교육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자연 보다 말씀이 먼저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자연 보다 나중에 창조되었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동물들의 이름을 아담이 지었다. 자연을 하나님의 섭리대로 관리하고 정복하는 것은 인간의 사명이다. 자연 보다 인간이 우위에 있다.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이 있다.


교육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을 어떤 구조로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본래 가졌던 세상의 원형을 회복해야 한다. 창조질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에 따라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뿌리 없는 잘못된 교육이 인간을 지배하면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오히려 이런 교육은 교육을 할수록 점차 인성이 말라가고 허무한 삶이 된다. 이런 면에서 성경을 근거로 한 교육구조의 전환은 아주 시급하다.


한 대안학교의 가르침에서 배운 경험


필자는 오랫동안 섬겼던 기독 대안학교를 돌아 보면 다른 대안학교와 비슷한 구조로 교육과정이 설정되었다. 물론 세상의 교육 보다는 우수한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에서 볼때는 부족함이 많다. 예를 들면 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성경을 기초로 하는 교육’을 말하고 있다. 세부내용을 보면 “ 인간관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타락 후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다. 지식관 –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교육관 – 교육의 기준, 방법과 원리를 성경에서 찾는다“ 로 되어 있다. 교육의 전체가 철저히 성경중심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학교와 차별이 되는 분명 우수한 점이다.

그러나 정말 교육의 뿌리가 성경이라면 철저히 성경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아직 명확한 교육관의 정립이 부족함을 보게 된다. 목표는 성경중심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에서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성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생각은 있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점이다. 이것은 다른 기독대안학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교육은 뿌리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중요하다 – 한국교육의 가장 큰 약점


철저히 성경이 이끄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저학년에서는 성경의 학습량이 월등히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다른 과목과 비슷한 수준에서 성경을 배우고 있다. 중학교의 경우를 보면 일주일에 성경 과목은 2시간이 배정 되었다. 사실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성경은 여전히 절대적인 과목이 아닌 상대적인 과목으로 존재하고 있다. 미션스쿨에서 마치 종교과목으로 하나 들어 가 있는 것과 같다. 이것으로는 삶의 뿌리를 세우는데 부족하다. 정말 교육의 뿌리가 성경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철저히 성경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에 성경의 시간을 더 늘리거나 오전에는 성경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오후에 일반 과목을 배우는 교과과정의 과감한 전환이 요구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릴적 부터 성경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갑자기 중. 고등학교에서 성경교육을 강화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때만 되면 학생들은 벌써 대학공부 준비 때문에 차분히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성경으로 학과목도 해결된다면 – 유대인 예시바학교가 잘 적용 하고 있다



사실 성경을 배운다는 것이 모든 학문의 기초를 성경을 통해 이미 숙달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성경을 배우면서 영어와 국어의 논술과 토론과 쓰기와 읽기. 그리고 역사와 사회 등의 과목이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
물론 경험이 안 된 상황에서는 과연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설득력이 있게 교사와 학생과 부모들이 이해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어려움이 있다. 현실적으로 제도권의 교육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방편으로서 교육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기에 이런 교육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한번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유대인 예시바 학교에서 이미 검증이 되고 있는 사례이기에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의 신학교육의 문제점


이것은 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작은 신학교까지 합치면 200여개 학교가 된다. 교단의 대표적인 신학교를 살펴보아도 이런 현상은 쉽게 알 수 있다. 적어도 학부 1-2학년에는 성경을 철저히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그것을 기초로 다른 학문들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다. 신학교 조차도 성경은 많은 학문들 중에 하나로 존재한다. 실용적인 학문이 점차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신학의 뿌리인 성경은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당연히 신학교육은 기초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신학교 역시 일반학교와 거의 비슷한 형태로 나가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영적 지도자가 될 사람이 만약 신학교에서 성경을 잘 배우지 못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역현상은 오늘 우리 신앙교육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 준다.


유대인 교육의 원리를 적용하라


세상의 변하지 않는 가치를 붙잡는 유대인의 교육을 우리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대인은 진리에 근거한 교육이기에 어떤 유행과 풍파가 닥쳐도 변함 없이 교육의 틀을 유지할 수 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변하지 않는 교육의 구조가 요구된다. 학교나 가정에서 이런 교육의 틀을 가진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가문의 영광의 길이 열린 것이다.

시간속에서 절기와 명절과 기념일 통해 오감을 개발하라

절기에 숨어있는 공부의 비밀

우리공부는 주로 지식에 머문다. 그러다 보니 공부가 거의 책에 의존한다. 그러나 유대인의 공부는 특별하다. 전인적으로 공부한다. 유대인은 토라를 배울 때 책이나 지식적인 배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토라의 구절을 담은 작은 정사각형의 상자를 만들어 미간과 손목에 붙인다. 이것을 테필린이라고 말한다. 또 직사각형의 통속에 토라의 말씀을 넣어서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붙인다. 이것을 메주자라고 말한다. 이것은 토라에 기록된 미간과 손목과 문설주에 붙이는 명령의 지침을 그대로 따라서 실천한 것이다.

테필린 안은 4개의 방이 있는데 출애굽기13:1-10, 출애굽기 13:11-16과 신명기 6:11,16.신명기 11:13-21의 말씀이 들어 있다. 지금도 유대인은 이것을 사람의 몸에 붙이고 집 문설주에 붙인다. 그것은 집에 나가고 들어갈 때 보고 손에 대고 입맞춤을 한다. 또 몸에 테필린을 붙이고 외출을 한다. 이것은 머리와 손에 말씀을 새겨 넣는 것과 같은 시각적인 의미가 있다. 잊어버리지 않고 몸에 각인하기 위한 오감 교육방법이다.

명절을 통해 오감을 체험하라

유대인은 일년간에 절기가 계속 이어진다. 안식을 시작으로 거의 분기마다 유월절, 초막절. 대속죄일. 부림절. 하누카 절기 등 일년이 절기로 구성된다고 보면 된다. 유대인의 절기는 우리로 말하면 국가 명졀에 해당된다. 유대인은 절기에 온가족이 함께 지킨다. 보통 1주일간 계속된다. 그들은 이날을 공부의 날로 삼는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성경의 내용과 유대인 전통과 역사를 공부한다. 유대인 역사를 일년동안 절기를 지키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다.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닌 오감과 몸으로 공동체와 가족이 함께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한다.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는 방법들은 자손 대대로 전수가 된다.

보이는 오감으로 보이지 않는 정체성을 체득하라

오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절기공부는 역사, 철학, 사상, 의식, 전통, 공동체와 민족성을 총체적으로 몸으로 배우게 한다. 모든 절기마다 까다로운 규칙이 있는데 그것을 아버지는 자녀에게 전수한다. 유대인은 절기를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부모에 대한 예의와 식탁 예절을 몸에 익힌다. 안식일은 촛불을 켜고 안식을 빵을 먹고 유월절 절기에 무교병과 소금과 쓴나물을 먹는다. 초막절은 나뭇잎으로 집 앞에 초막을 만들어 그곳에서 일주일간 가족이 지낸다

. 머리에 키파라는 작은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며 늘 하나님 아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모자를 통해 몸에 체득한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행한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의 표피를 베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별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자는 평생 자신의 할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유대인임을 인식한다.

온몸으로 공부하는 유대인의 공부효과

정통 유대인들은 어린이까지 옷자락의 귀퉁이에 청색 끈을 만들어 부착하고 다닌다. 이 끈은 하나님의 법을 상징한다. 유대인은 자기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이 끈을 통해 기억한다. 전통 명절인 부림절에는 성경 에스더에 나오는 악한 대적 하만을 상징하는 하만 만두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하만을 이겼던 승리의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 또 유대인은 기도를 할 때 기도복을 입고 기도를 한다.

이것을 탈릿트라고 말하는데 탈릿트 끝에도 보면 끈들이 달려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상징한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백향목을 심고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는다. 나중에 자라서 결혼할 때 이 나무로 결혼식의 차양을 만든다. 아이가 자라서 성장하여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결혼식에서 유리컵을 깨는 순서가 반드시 들어간다. 즐거운 결혼식에 왜 유리컵을 깨는가?

첫째는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을 때에 성전이 허물어지고 역사가 실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깨뜨려진 유리 조각들을 원상 복구할 수 없듯이 결혼도 물릴 수 없는 영원한 것임을 신랑과 신부가 다짐하기 위해서다.

오감을 열어 사람 몸에 흔적을 남겨라

유대인은 자녀를 교육할 때나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시청각 방법들을 생활 프로그램으로 적용한다. 그것은 교훈을 머리로만 아닌 실제로 몸에 체득하여 실천하기 위해서다. 수많은 의식과 상징을 통하면 잊어버리지 않게 되고 오랫동안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우리는 공부를 거의 책으로만 하지만 유대인은 오감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공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오감을 동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식은 오감을 통해 우리마음과 생각에 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은 이런 원리를 교육에 잘 적용한다. 반면에 우리는 책을 보며 강의를 듣는 시각과 청각에만 의존한다. 당연히 오감을 의존하는 유대인 공부가 시각과 청각에만 우리 공부 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보고 듣는 것도 우리는 오직 책에만 의존하는 점에서 우리공부는 한계가 있다.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의 숨은 비밀은 교육에 있다

이스라엘 유대광야에서 하룻밤을 지낸후에 저녁 황혼에 친구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멸망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사, 헬라. 로마, 몽골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고대국가들이다. 그들은 모두 한때 대단한 영광을 누렸던 나라였지만, 다음 시대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역사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중요한 원인은 교육에 있다. 한 나라를 영원히 세우며 다음 세대까지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은 교육이다. 특히 다음 세대를 키우는 교육에 투자한 민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설사 땅이 사라진다 해도 민족은 건재 한다. 많은 고대 국가들이 사라졌지만 그 가운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통과 문화가 그대로 전수되고 있는 민족이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고대국가들 중에 가장 작은 나라였지만 그들과 싸움에서 멸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는데 그 비결은 교육에 있다.

       0.2% 소수 민족 유대인이  세계 최강국이 된  비결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멸망되었을 때 유대인들은 로마의 힘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잘못을 찾았다. 즉 잘못된 교육이 결국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마음에 새긴 유대인은 그 이후에 교육에 민족의 운명을 걸었다. 그 결과 유대인은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거듭났다. 오천년을 내려온 유대인 교육의 저력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들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자녀 교육에 승부를 걸면서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일은 어느 민족 보다 열심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어려움을 통해 얻은 지혜였다. 이스라엘의 의무 교육법에 의하면 5-16세까지 아이들은 의무교육을 받는다. 또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18세 이후라도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역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교육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스라엘은 GDP의 8%를 교육에 투자한다. 전쟁의 위험으로 군사비에 많은 지출을 하고 있음에도 이만한 교육비를 투자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평생 배우면 누구나 1인자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생활이 어려우면 가지고 있는 물건을 팔아서 생계를 꾸린다. 이때 유대인은 가장 먼저 처분하는 것이 금이고 그 다음은 집과 땅이다. 그리고 끝까지 남겨 두는 것은 책이다. 유대인에게 교육의 도구인 책은 생명과도 같다. 1736년 라트비아의 유대인은 법률을 정했는데, 그 법에 따르면 상대가 부탁했을 때 책을 빌려주지 않는 사람은 벌금에 처했다. 이것은 유대인은 얼마나 교육을 중시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교육속에 인생 성공의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가 정말 성공 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교육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평생 동안 배우면 누구나 자기만의 영역에서 1인자가 될 수 있다.

의미공부법 : 이유를 알면 공부가 즐겁다

이유 있는 공부 : 죽음과 고난을 이기는 비결이 있다

‘의미요법’을 창시한 정신과 의사이며 유대인이었던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 3년 동안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의 기간을 보냈다. 그는 수용소에서 수없이 죽어가는 수감자들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단 한 가지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어진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기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가 없으며, 이런 정신적 자유야말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의미 있는 것을 창조하면서 그것을 위해 행동을 시도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갖고 희망을 꿈꾸었던 사람은 죽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빅터 프랭클 자신도 이런 희망을 가지고 수용소에서 원고 쓰는 일을 게으르지 않았고 다른 동료들을 상담하며 격려하며 공부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비록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상황이었지만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물론 그 의미에는 고통과 궁핍과 죽음도 포함된다.

빅터 프랭클을 가스실에의 죽음에서 구한 기적을 배우라

빅터 프랭클은 전쟁이 끝나 극적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그는 그토록 소망했던 아내와 가족들이 모두 죽은 사실을 알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수용소에서부터 썼던 원고를 출판하고 90세까지 살면서 22권의 책을 더 저술했다. 그중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깨달은 내용을 정리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는 천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한 번도 인생을 뒷걸음치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 갈수 있었던 이유는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배경은 유대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유대인의 공부가 삶에 배인 결과라 생각된다. 유대인은 수 천년 동안 많은 고난을 공부와 교육으로 이겨낸 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유대인 부모는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지금까지 유대인의 역사가 그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고난을 이기는 순간 공부가 된다

사람은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지고 성장하기를 원한다. 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그것을 이루는 비결은 공부다. 자기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서 공부는 필수적이다. 성공과 행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할 때 찾아온다. 무엇이든지 공부하지 않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꼭 학교 공부가 아니더라도 공부는 삶의 모든 곳에 적용된다.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래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가정생활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정 구성원들이 공부에 힘쓰는 일은 필연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 공부 없이 행복은 오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는 만큼 행복은 찾아온다. 설사 공부를 통하여 당장 무엇을 얻지 못해도 이미 공부하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100세를 잘사는 길은 공부에 달려 있다

예전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50여년 남짓 시간이 있다. 그렇다면 긴 기간 동안 인생의 의미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신나게 살 수 있는 길은 공부하는 일이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목적을 이루며 살 수 있는 길은 공부에 답이 있다. 현대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한 100세를 잘 살기 위해서는 공부는 필수다. 자기의 만족과 행복은 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은 자아실현을 위해서, 어떤 사람은 더 높은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이처럼 공부하는 목적은 사람마다 아주 다양하다. 공부를 학교 공부로만 고정시킬 수 없다. 공부는 모든 것을 이루는데 있어 필수다.

왜 사람들은 공부를 그렇게 싫어 할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공부를 그렇게도 싫어할까?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 공부를 지겨워하는 사람이 많다. “공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항변할 정도로 공부는 학생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하지만 공부는 학교를 졸업해도 인생에서 피할 수 없다. 어느 것도 공부 없이 되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공부를 즐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아직도 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평생 공부는 어렵다.

우리 주변에는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공부도 같이 그만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주로 공원이나 양로원에 가 있다. 그러나 유대인 노인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도서관에서 찾기 힘들다.

그러나 유대인 노인들은 흰머리와 수염이 가득함에도 탈무드 학교에 다니거나 탈무드를 공부하면서 하루를 지낸다. 손주들에게 탈무드를 가르치며 교육하는 모습은 흔한 일이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토라와 탈무드를 손에 놓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공부는 지겨운 일이 된 이유

우리는 ‘공부’ 말만 들어도 지겨워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겨운 공부라고 아예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왜 공부가 지겨운 것이 되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공부를 단순히 학교 공부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공부는 많은 공부 중에 한 부분임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학교공부는 거의 지적인 부분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지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당연히 학교 공부가 힘들 수밖에 없다. 물론 지적 수순이 발달 된 사람은 학교 공부가 즐겁다. 그리고 주어진 과제들을 충분히 소화 해 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공부가 생각만 해도 힘들고 지겹다

.

공부를 지적영역만 죽기까지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은 공부가 지적영역, 주로 국. 영. 수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이 과목들은 대학 수학 능력 고사에서 배점과 변별력이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싫어도 국어. 영어. 수학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초, 중, 고등학교 긴 기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목이 국어. 영어. 수학이다.

고등학교의 과목 내용을 보면 그 수준은 상당히 높다. 어른들이 보아도 이해가 어렵다. 그것을 보면 과연 모든 학생이 이런 공부를 꼭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들 중에는 현실에서 적용될 수 없는 것이 많다. 어떤 것들은 평생 동안 사용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보면 거의 전공 수준에 가깝다. 과연 국. 영. 수의 이런 과목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10년 넘게 모든 학생들이 동일하게 시간을 바쳐야 하는가. 문교부가 정한 몇 과목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결정적 요인이 되는가.

그것으로 공부를 과연 평가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감이 든다. 심지어 그것으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사회와 학교 분위기는 모두를 좌절하게 만든다. 이렇게 10년 정도 학교생활을 하면 학생들은 지칠수 밖에 없다.

변하지 않는 원리에 따른 4가지 공부법

01 , 어디서도 통하는 변하지 않는 우주의 법칙을 따라 공부하라

우주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주를 살펴보면 법칙과 질서가 있고 그것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인다. 한 치의 오차만 생겨도 우주는 불바다가 된다. 그것은 우주를 움직이고 지배하는 우주의 원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에도 원리가 있듯이 인간의 몸에도 원리가 있고 모든 생물과 식물과 자연 속에는 원리가 있다. 인간은 태초 이래로 정확한 원리에 따라 정교하게 움직이며 출생과 성장과 죽음을 거듭하고 있다. 원리는 시대가 지나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만약 상황과 시대에 따라 자꾸 변한다면 그것은 원리가 아니다.

02. 숨어 있는 자연질서속에서 원리를 찾으라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원리의 힘을 믿고 그 원리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자기 생각과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 원리를 자기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원리에 따라 살면 틀림없이 성공하게 되어 있다. 원리대로 사는 것은 곧 진리의 삶이다. 사람의 몸에 병이 나고 환경오염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원리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적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03. 원리에서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도출하라

교육도 원리를 찾아 그 원리대로 할 때 효과가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그동안 원리 보다는 방법에 치중했다. 교육원리가 없는 교육이다 보니 모방에 그쳤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지 못했다. 열심히 하는 만큼 효과가 적은 이유는 원리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법은 언제나 원리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결과와 실용성만 강조한 방법은 잠시 있다 사라진다. 방법은 수시로 변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방법은 변신을 거듭한다. 그러나 원리는 변하지 않는 평생지침이다. 과학을 보면 이해가 된다. 과학은 나타난 현상 속에서 숨어 있는 원리를 찾는 것이다. 그 찾은 원리를 다시 생활에 응용하는 것이다. 과학은 이미 나타나는 결과와 방법들을 통해서 숨어 있는 원리를 찾는 것이다. 과학은 원리를 찾아내는 학문이이다. 나타난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원리를 찾아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원리와 방법은 상호적이다. 답이 함께 들어 있다. 이것은 원리와 방법이 일치해야 함을 의미한다.

04 공부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방법 보다 원리에 충실한다

교육에서 원리를 먼저 점검하여 바르게 정리가 된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교사, 부모, 학생, 자녀 모두가 이 원리를 알고 교육하는 것과 이것을 모르고 방법에만 매달려 당장의 결과만 추구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원리에 충실하면 당장 결과가 없어도 언젠가는 결과가 맺힌다. 원리를 이해하면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교육을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이 단기적이며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원인은 아직 교육의 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표와 비전은 있는데 교육의 원리를 분명하게 잡지 못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이라도 원리를 충분히 숙지하고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 교육의 다양한 방법들을 찾는 다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저 출산, 공부가 힘들다고?- 공부민족, 유대인 5천년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라

저출산으로 저주 받은 나라를 구하라

과연 어떻게 한 국가와 정부도 풀지 못하는 이 어려운일을 풀어 낼수 있는가? 수십조원을 투자하고서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것은 저출산을 만들어 낸 근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을 보지 못한 정책을 수립하다 보니 예산만 낭비하고 시간만 보내게 된다. 현재 저출산의 모델로 세계 1위인 국가가 이스라엘이다. 우리는 1명도 안되지만 그들은 평균 4명정도 자녀를 낳는다. 지금 한국이 가장 벤치 마킹해야 할 국가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 보고 역사속에서 답을 찾는 것이 순서다. 교육을 가장 먼저 시작하고 그것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발전 시켜온 민족이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가진 것이 없기에 오직 지식으로 승부를 걸고 온민족이 올인했다. 5년쳔이 지난 지금도 사라자지 않는 유일한 고대국가가 되었다. 그것뿐 아니라 세계 최강이 민족으로 세계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무엇이 그들로 그렇게 불사조와 같은 힘을 얻었는지 그 비결을 배워 우리에게도 적용한다면 우리도 가능하다, 이미 수천년동안 검증된 것이기에 원리를 찾아 우리에게 적용하면 된다.

예즈덤휴먼 빌더는 유대인교육중에서 강점을 찾아 그 원리를 우리에게 적용하는 방법을 제시할 것이다. 역사에서 배우면 큰 힘을 안들여도 충분히 내낼 수 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고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한다면

머지 않아 새로운 도약을 할수 있고 그것을 이웃과 아프리키나, 아시아. 아메리카등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을 메시지를 주면 좋을 것이다

공부하는 민족, 유대인 공부를 벤치 마킹하라

필자가 이것을 위해 모델로 찾은 것이 유대인 공부다. 유대인 공부는 한마디로 소수의 1% 천재를 만드는 레드오션이 아닌 모든 국민을 100% 천재를 만드는 블루오션 공부법이다. 필자가 유대인 공부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유대인은 같은 동양 민족이고 역사적, 문화적, 신앙적, 교육적으로 비슷한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 하나는 공부의 원초적인 자리를 찾고 싶었는데 바로 고대의 공부를 유대인이 수천년 동안 잘 보존하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다는데 감동을 받았다.

오랫동안 검증된 공부도구가 필요하다

유대인은 이렇게 수천년 동안 전수되고 검증된 그들만의 국민적 공부법을 체득하고 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유대인 공부는 학과공부를 넘어 평생을 이기게 하는 전인적 공부요, 자녀 뿐 아니라 성인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전전후 공부라는 점이다. 그런 유대인이 오랫동안 터득한 공부원리를 찾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는데 있다.

유대인이 공부하는 민족으로 세계속에 서게 된 것은 자기 나름대로 공부시스템을 가정과 부모에게 전수받고 공부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자기들의 공부법을 전 국민에게 어릴 때부터 공부하게 함으로 나라를 튼튼하게 세워 나가고 있다. 지금도 이런 공부 도구로 자손대대로 전수되어 5천년을 이어오고 있다. 오직 공부 하나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유대인의 공부비결을 찾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어디서 거대한 이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 낼수 있을까?

우리는 공부의 내용에 치중한다. 그러다 보니 공부의 내용을 암기하고 지식을 가능한 많이 주입하는 것에 공부의 핵심이 있다. 학교에서나 입시에서 공부를 보면 얼마나 내용을 많이 알고 있느냐에 관심이 있다. 모든 학교의 공부과정은 많은 분량의 내용을 암기하고 습득하는 일에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느 누구도 어떻게 공부하는지 공부법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다.

공부내용보다 공부방법이다

하지만 유대인은 우리와 같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공부의 내용 보다 공부법에 더 치중한다. 탈무드에 보면 “물고기를 주어라. 한 끼를 먹을 것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어라. 평생을 먹을 것이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유대인 교육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내용으로 유대인의 공부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해주는 구절이다. 세상의 그 많은 공부를 다 할 수 없다. 계속 생겨나는 세상의 지식을 공부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그것은 공부법을 터득하면 된다. 이것이 유대인의 공부에 대한 생각이다.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공부법은 없다( ?)

물론 유대인들은 ‘유대인공부법’이라는 특별한 매뉴얼을 만든 것은 없다. 유대인은 수천 년에 걸쳐서 자기 몸에 체득되었기에 그들에게는 이런 비법을 따로 알려주는 것이 무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그들의 공부법을 알기 위해서는 알기 쉽게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공부법이 소개되었지만 대부분 서구적인 공부법이 주를 이루었다. 실제 지금 우리 학교교육은 모두 서구적인 교육방법을 따르고 있다.

SAMSUNG DIGIMAX 360

예즈덤 휴먼빌더는 동서양을 통합한 공부법이다

여기 소개하는 유대인 공부법은 서양과 동양을 통합한 공부법이다. 또한 이 공부

법은 지식과 이성을 중심한 헬라식 서구공부와 다르다. 유대인 공부는 마음. 오감. 신체. 지식,지혜에 이르는 전인적인 공부법으로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평생 계속 적용할 수 있다. 또한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이 함께 공부하는 시스템으로 자손대대로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는 공부법이다.

우리는 지식을 쌓고 기술을 습득하는 면에서 공부법을 이해하지만 유대인공부법은 인간자체를 공부한다. 즉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공부법을 넘어 인간을 인간 되게 하는 공부법이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기 보다는 인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드는 공부를 하면 나머지 학교공부와 능력과 기술적인 부분은 자연히 따라 온다는 것이 유대인들이 갖는 공부의 생각이다.

유대인처럼 될 수 없지만 그들의 공부원리는 배울수 있다

이런 유대인의 공부법을 우리에게 잘 적용한다면 지금의 입시와 학교공부 중심의 공부에서 벗어나 평생 공부하는 민족으로서 삶을 즐길 수 있다. 이런 공부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사회에 나가 직장과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공부한 대로 실천하는 살아 있는 공부의 길이 열린다. 이렇게 평생 동안 공부를 즐기고 배움의 과정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탁월함과 아울러 행복함을 동시에 얻게 되는 날이 찾아 온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은퇴할 인생의 마지막 즈음에서 노벨상등으로 놀라운 창의적 성과를 올리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유대인을 뛰어 넘는 한국인에 맞는 공부법을 찾아라

이 글은 단순히 유대인 공부법을 소개하거나, 공부 잘하는 사람을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는 내용아 아니다. 필자는 유대인을 뛰어넘는 한국인의 공부법이 만들어져 자손대대로 유산으로 물려주는 행복한 그날을 소원하면서 집필했다. 이 사이트는 일차적으로 유대인 공부의 강점을 기본으로 하여 쓰여졌지만, 긍극적인 핵심은 오늘 우리 한국사회를 튼튼하게 할 공부에 대한 해결점을 모색하고 그 대안을 찾는데 있다. 물론 유대인공부가 많은 부분에서 탁월한 방법이지만 그들에게도 많은 문제가 있다. 특히 우리 문화와 다른 배경을 무시하고 유대인 교육이나 공부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대인의 전부가 아닌 강점을 찾아 적용한다

이런 점에서 본 글은 유대인의 공부법 중에서도 부정적인 요인은 제외하고 우리에게 맞는 긍정적인 부분을 선택하여 한국적인 공부법을 제시하는데 주안점을 두고 집필했음을 알려둔다. 유대인이 갖지 못하는 우리만의 강점을 찾아 우리 공부의 그림을 새롭게 디자인 하는데 의미가 있다.

부족하지만 이 글을 통하여 그동안 공부에 대한 많은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과 한국인의 공부의 방향을 제시하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했으면 한다. 모두가 행복 때문에 공부를 시작하지만 오히려 공부 때문에 불행해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 글이 풀기 어려운 한국의 교육과 공부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접촉점이 되고 아울러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공부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막상 문제점을 제시하고 비판은 하지만 정작 대안을 찾기는 어려운 현실에서 공부의 한 대안을 찾는 출발점이 되면 좋겠다.

AI 와 쳇봇이 공부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특히 100세 시대, 평생공부시대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어떻게 평생공부를 어릴 때부터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기존의 학과목 중심의 공부법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공부법을 제시했다. 즉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마음과 생각과 몸을 중심으로 공부법을 전개했다. 인간에 초점을 두고 지식과 마음. 오감. 신체. 지식. 지혜의 통합영역을 따라 인간 자체를 공부하는 방향으로 공부법을 구성했다. 그동안 우리는 공부를 점수를 좋게 받아 경쟁에서 이기거나, 좋은 학교나 직장에 들어가는 목표로 삼았다.

공부는 행복을 이루는 기술이다

공부를 즐기기 보다는 출세의 도구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글은 공부를 통해 인간의 본질을 깨닫고 거기에서 인간의 삶과 기술을 연마하여 공부로 인간이 행복해지는데 초점을 두었다.

책 보다 사람을 공부하고, 책과 씨름하기 보다는 사람과 소통하며 , 스펙 보다는 진리를 찾는 것이 유대인 공부법과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사이트를 통해 진정한 공부가 무엇이며 그것을 우리 한국적인 상황에서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모색하는 행복한 공부여행이 되길 소원해 본다.

Optimized by Optimole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