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와 10-20대를 망치는 1

에잉 ...다 네탓이야

 

 자기 중심의 생각을  벗어나라


십대는 모든 것을 자기 중심에서 생각하려하는 특성이 있기에 자칫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잊어 버릴때가 있다 . 자기만족과 자기감정을 우선으로 생각하기에 잘못하면 모든 문제의 잘못을 다른 사람으로 돌리기 쉽다

지금 내가 공부를 잘 못하는 것은 부모님 때문이야 아니면 환경탓이야 하면서 주위의 요건에 잘못을 탓할 수 있다 .

반항적이고 불평이 많은 십대들을 대하면 대부분 자기 책임의식이 없고 모든 문제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다 보니까 자연히 자기는 아무문제가 없는데 상활이 안좋아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를 해롭게 했기에 현재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자기 인생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내 주변만 보다 보면 시야가 좁다
 

그것은 잘못된 모습이다. 너무 작은 웅덩이에서 문제를 바라 보기에 이런 착각이 나온다

물론 어떤 경우는 친구를 잘 못 두어서 아니면 부모를 잘 못 만나서 등등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실제 그렇게 되는 경우가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답이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런 생활속에서도 잘 극복하여 위대한 일을 이룬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자기 스스로 강해지고 세상을 보다 넓게 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감사한 사람이 있다.



어려운 환경이 세계관을 크게 한다-  슈베르트 사례 


고난당함이 오히려 나에게는 유익이 될 수 있다 . 어려운 상황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백안시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가곡의 왕이라고 불리워진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 슈베르트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 처럼 교사가 되었으면 원 했지만 슈베르트는 음악의 길을 걷기를 원했다. 아들의 고집으로 화가 난 아버지는 슈베르트를 내 쫒았다

집에서 쫒겨난 슈베르트는 친구집에 살면서 가난한 생활을 했다. 오선지가 살돈이 없어서

실의에 빠진 적인 한두번이 아니었다 . 저녁먹을 돈이 없어서 배를 움켜쥐기도 했다

좋은 멜로디가 생각이 나더라도 오선지가 없어서 바로 곡을 쓸수 없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한 친구가 수첩을 찢어서 오선을 그려주었다. 슈베르트는 그런 상황속에서도 작곡을 하여 마침내 곡이 완성 되었는데 그 작품이 유명한 세레나데였다

 

만약 아버지를 원망하며 스스로 원하는 길을 포기했다면 그 유명한 슈베르트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

 

 잠재력을 키우는 기회로 삼으라
 

십대의 시기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기 쉽다

이것은 스스로 보호하고픈 본능에서 나온 현상이다 . 십대들은 아직 자기 스스로의 능력이 약하기에 좋은 조건이 갖추어지기를 원한다. 그런 이유로 좋은 조건 의 가정이나 재산이 많은 부모님의 환경을 은근히 바란다. 만약 이런 상황이 자기에게 주어지지 못하면 부모님을 원망하고 자기 환경을 탓하는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반항심이 나온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보라. 오히려 그런 어려운 환경과 역경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내안에 있는 잠재력을 깨우치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가 스스로 문제를 부딛치며 책임지려는 마음을 가져 보면 갑자기 어려웠던 문제가 흥미 있게 보여지고 도전심이 생기면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

단단한 땅을 어렵게 헤집고 나올때 그 식물은 건강하게 자랄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장애물이 없이 쉽게 싹이 나온다면 비바람과 폭풍우를 견디지 못하고 이내 쓰러지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남을 탓하지 말자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하는 연단의 기회로 삼고 힘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도전하며 나아가자.


믿음을 가지면 극복이 쉽다


이때 믿음이 필요하다.인간의 생각과 의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믿음을 가진 십대는 이런 면에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를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가면 남을 탓하는 일은 자라질 것이다 . 오히려 그 어려움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기회임을 깨닫는다면 우리에게 큰 유익이 될 것이다



기억하자


남의 탓이라고 하면 책임감이 사라지면서 힘이 빠진다. 그러나 내탓이라고 생각하면 책임감이 생기면서 갑자기 힘이 난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는 더 깊어진다


가장 오래된 바이올린

‘악기의 여왕’이라 불리는 바이올린은 사람의 목소리를 모델로 삼아 만들어진 날카롭고 화려한 음색을 가진 악기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바이올린은 다른 악기와 다르게 여자의 몸매를 연상하는 부드러운 곡선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바이올린 중에서 가장 오래된 바이올린은 몇 년이나 되었을까? 이탈리아 크레모나의 안드레아 아마티(Andrea Amati : 1511~1580년경)가 만들어 프랑스 궁전에 납품한 1562년제 바이올린이다. 유럽의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데 무려 450년 가까이 된 셈이다. 오래된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소리는 영혼을 울리는 아름다움이 있다. 바이올린의 겉 모습은 골동품으로 볼품이 없을지라도 이런 바이올린의 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왜 오래된 바이올린의 소리가 다 아름다울까?


왜 오래된 바이올린의 소리가 아름다울까? 그것은 바이올린 소리가 오랫동안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처음 만들어진 악기는 생소리를 낸다. 그러나 오랫동안 길들일수록 깊은 소리가 난다. 물론 무조건 오래된 악기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냥 바이올린을 오래 방치하면 형편없는 고물이 된다. 오랫동안 소리를 내고 길들일 때 천상의 소리를 내는 명품 바이올린이 된다.


나이가 드는 것은 오래된 바이올린과 같다


사람이 나이가 드는 것은 오래된 바이올린이 되는 것과 같다. 인생을 오랫동안 갈고 다듬으면서 나이가 들어간다. 이것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인생의 명품은 나이가 들면서 만들어진다. 사람의 가치는 외모보다 내면에 숨겨져 있는 영혼에 있다. 몸은 나이가 들면 점점 쇠퇴해진다. 그러나 속에 있는 영혼은 날로 새롭게 될 수 있다. 사람의 인격은 젊을 때는 아무래도 어설프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인격은 성숙되고 사람들에게 존경 받게 된다. 이것은 나이가 들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외면은 나이가 들면 쇠퇴하지만 내면은 더 젋어질수 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갑자기 슬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울을 보면 흰 머리가 하나 둘씩 생기는 것을 발견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게 된다. 40세 이상이 되면 이런 것을 종종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는 외적인 모습을 생각하면 인생이 슬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내면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만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보노라면 부끄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이제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남을 배려하고 참고 인내하며 겸손한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었기에 이전과 다른 철든 인생이 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있다


만약 나이가 들면서 그냥 세월만 보낸다면 그것은 퇴물 인생이다. 시류에 흘려 이리저리 시간만 보내는 사람은 나이가 들면 더욱 슬퍼진다. 그가 자랑한 것은 오직 젊음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인생의 깊이를 알고 자신을 다듬어 가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나이는 결코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원숙하고 온전해지는 의미가 있다. 날카롭고 둔탁한 소리로 사람들을 피곤하게 했던 젊은 시절과 다르게, 나이가 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면 나이가 드는 것은 멋있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랑의 지경을 넓혀라


사람이 나이를 먹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얼굴의 모습이 달라지고 주름이 하나씩 느는 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겪는 나이 먹는 과정이다. 그러나 동일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면의 영혼의 소리를 다듬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일을 잘 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한가지를 터득해야 한다. 그것은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이다. 나를 잘 다듬어서 그 모습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인생은 없을 것이다. 점점 나이가 들면서 자신 보다 하나님과 이웃에게 가까이 가는 사람이 된다면 그 나이는 죽어 가는 나이가 아닌 영원히 사는 나이가 되는 것이 아닐까?


● 이렇게 해보자


1. 나만의 소리를 찾아 보자. 아직 찾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기도하면서 그 소리를 찾아 보라

2. 바이올린은 자신을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에게 있는 천상의 소리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3.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연주회를 계획해 보면 어떨까? 그것을 위해서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라

4. 오늘 시간을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달란트를 계속 개발하는 시간으로 삼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자. 멋진 인생의 연주회를 꿈꾸고 지금부터 차근 차근 준비해보자.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바로 시작하라

30년동안 300명의 자녀(?)들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30년동안 300명의 자녀(?)들을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공부하면서 살아온 30년




28살 젊은 나이에 신학의 부름을 받고
올해로 어언 30년이 넘었다
신학대학원 재학중에 아내의 격려를 힘입어
첫 책을 수련회 경험을 토대로 정리한
교회교육 프로그램 집을 1989년 8월에 출간하게 되었고
그것이 시작이 되어 지금까지 성경교재와 생활적용 단행본을
계속 펴내어 오고 있다.


30년이 지난 약 300여권의 저서들이 나도 모르게 쌓였다
30년 동안 지난 역사와 흔적이 책속에 그대로 담겨져 있다
한국교회 교회교육 3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시대적 산물로서 책들이다.


주로 교회 현장속에서 얻은 고민과 말씀 실천 책으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책을 펴냈다.
자료를 조사해보니 1년에 약 10권을 매년마다 펴냈으며 일종의. 필자가 경험한 것을
정리하여 주님께 바친 사역 현장에 쓰여진 300여편의 논문인 셈이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 보면 어려움속에서도 매년마다 책을 펴내면서 30년을 지내왔다
마치 매년 10명의 자녀를 산고를 통해 출산한 것처럼 지금 필자에게는 300권의 책들을 보면 마지 300명의 자녀를 낳은 것과 같은 느낌이다
새 책이 출간할 때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같은 그 느낌을 지울수 없고 그때마다 새롭고 기대가 되었다



그런 느낌을 300번 했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지 상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수고하다 보니 어언 30년이 지났고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300여권의 책이 나도모르는 사이에 쌓였다. 물론 필자의 비용으로 낸 책은 한권도 없었고 모두 출판사에서 펴내준 것을 생각해 보면 모두 주님의 은혜다. 무명의 사람의 책을 펴내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에도 그것을 믿고 실행해준 많은 출판사 대표님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를 드린다. 어딘가 있을 함께 했던 편집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동안 펴낸 300권의 책들의 특징은 모두 성경을 통해서 얻은 지혜요 받은 은혜를 나의 말로 풀어낸 산물이다. 이렇게 보면 내가 한 것이 아닌 주님이 하신 것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책들이 호응을 받고 있는 장수하는 책들이 많이 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그들은 지금도 그 생명의 책들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전도를 하고 각자 생명을 살리고 제자삼는 일을 하고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특히 성경 공부교재들은 외국의 한인들과 특히 유학생들이 애용하는 지침서가 되었다.


 이제 남은 하나님의 시간이 얼마 허락이 될지 모르겠다. 앞으로 10년 이상이 지난다고 보면 앞으로 약 100여권의 책들이 지금처럼 나올 것이다. 바라기는 500권의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 500여권을 한권으로 만들어 성경 아래두고 참고할 유대인의 탈무드를 넘어서는 복음을 드러내는 성경을 가까이 하게하는 친근한 참고서로 각가정과 다음세대에 작은 보물로 전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500권을 한권으로 정리해서 복음생명을 담은 유기적인 책으로 잘 정리하여 한국교회와 크리스천에게 작은 선물로 전해주고 주님 앞으로 가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마무리 작업으로 “성경미리토크(MRTC)”를 구상하며 500권을 한권의 책으로 만드는 일을 준비 중이다. 함께 도울 롬 16장에 나오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뵈뵈와 바나바. 디모데와 같은 좋은 동역자를 보내주시고 만나게 하기를 기도한다. 같이 이룰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면서..


“ 성경의, 성경에 의한, 성경을 위한 책”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줄수 있는


한국교회가 공유할수 있는 말씀 유산 자료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부족한 사람을 알고 있는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를 구하면서..



30년을 반추하면서..
2023.8.15. 광복절에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5가지 특징

감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감정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감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감정을 가진 존재다. 슬퍼하고 즐거워 하는 감정은 인간은 모두 가지고 있다 . 만약 이런 감정이 없다면 그 사람은 병든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은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예수님도 감정을 감추지 않으셨다. 슬퍼하고 노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을 표현하셨다.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때 슬퍼서 우셨다. 제자들이 어린아이를 무시할 때는 분노하셨다. 십자가를 앞두고 갯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슬퍼하셨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위선적인 행동을 하며 말씀을 거역할 때 분노하셨다. 요셉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다. 형들을 만났을 때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울었다. 바울은 “즐거워 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 롬 12:15) 고 말했다.


감정은 양면성이 있다


감정은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많은 문제를 야기 할 수 있다.그러나 감정을 잘 사용하면 행복을 느낄수 있다. 기분이 좋아지고 하루가 갑자기 힘이 난다. 누군가의 칭찬을 듣거나 상을 받으면 아주 기분이 좋다. 이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반적인 감정이다. 사람과 만남에서 감정을 무시하면 안된다. 사람은 감정적인 존재다.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옳아도 감정이 상하면 그것은 마음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감정은 생각과 다른 측면이 있다.그러나 감정을 잘못 사용하면 큰 문제가 될수 있고 인간을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좋은 감정을 가지지 못하고 나쁜 감정을 가지면 인간이 망가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과 감사로 감정이 사용되면 그것은 좋은 일이다.



감정은 맹목적일 때가 있다


감정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어떤때는 말릴 수 없이 맹목적이다. 생각으로 통제가 안되면 그야 말로 감정은 맹목적이 된다. 감정이 절제하지 못하고 앞서면 어떤 이론이나 합리적인 사실로도 그 감정을 막을수 없다, 감정의 힘은 강력하다. 감정은 흔히 느끼는 “감”과 같이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 모호한 면이 들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무시할 수 없다. 감정을 정확하게 구분 짓고 설명한다는 것은 어렵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큰 위인들도 마지막에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이유로 불행한 종말을 고한 경우가 많다. 감정이 곧 자기가 되면 그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감정대로 행동한다. 감정을 이기는 힘을 상실하면 고삐불린 말처럼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혈질적이고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늘 불안하다.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금방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감정을 믿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감정으로 일을 처리한 한 것은 그래서 믿을 것이 못된다.


감정은 선택의 문제다


감정은 시각과 청각과 감각과 개인적인 문제 또는 사고방식과 믿음에 따라 늘 달라진다.
갑작스런 사건을 닥친 경우에 사람마다 다양하게 감정이 나타난다. 마음먹기에 따라 감정이 변한다. 외부사건이나 상황은 바꿀수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응방법은 선택할수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선택은 달라질수 있다. 이런면에서 감정은 선택이다. 감정을 통제 할수 없다는 생각이 많은데 그러나 감정은 우리의 판단에 따라 바꿀수 있다. 반사적 감정에 오랫동안 익숙하기에 우리는 감정에 대해서 무방비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생각과 마음의 힘이 상실할 때 감정은 아무 방해 없이 폭발하는 특징이 있다. 생각과 마음에 따라 감정은 조절할 수 있다.


감정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감정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어떤때는 말릴 수 없이 맹목적이다. 생각으로 통제가 안되면 그야 말로 감정은 맹목적이 된다. 감정이 절제하지 못하고 앞서면 어떤 이론이나 합리적인 사실로도 그 감정을 막을수 없다, 이런면에서 감정의 힘은 강력하다. 감정은 흔히 느끼는 “감”과 같이 설명하기 어려운 애매 모호한 면이 들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무시할 수 없다. 감정을 정확하게 구분 짓고 설명한다는 것은 어렵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큰 위인들도 마지막에 자기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이유로 불행한 종말을 고한 경우가 많다. 감정이 곧 자기가 되면 그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감정대로 행동한다. 감정을 이기는 힘을 상실하면 고삐불린 말처럼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다혈질적이고 감정에 사로잡힌 사람은 늘 불안하다.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가도 금방 기분이 나빠지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감정을 믿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감정으로 일을 처리한 한 것은 그래서 믿을 것이 못된다.

잘못된 감정에 사로잡힐 때 생기는 2가지 문제


잘못된 감정에 사로잡힐 때 유의해야 할 2가지 문제



스트레스



현대에 가장 무서운 것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다양한 환경속에서 그것을 이겨나가기 위해 다양한 부담감을 느끼는데 그것의 불균형 현상이 생길때 나타난다. 환경에 대하여 대체능력이 약해지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스트레스에는 생리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스트레스가 있다. 생리적 스트레스는 과다한 부과의 요구로 우리 몸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를 들면 힘이 들때는 땀을 많이 흘리고 피로를 느끼며 심장 박동이 빠르고 혈압이 증가한다. 현기증이 생기고 두통이 일어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피속에 품어지면서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더위와 추위에 적응이 안될때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때는 적절한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다.심리적 스트레스는 마음에서 오는 분노.불안,공포. 질투와 시기와 욕심등으로 신체적 부담에서 오는 형상들이 몸에 나타난다. 물론 이 둘은 같이 일어나기도 한다.이러한 스트레스는 감정과 관계가 있다. 스트레스는 주로 나쁜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정신적인 병인 스트레스에 민감하면 소화불량.복통. 위장장애. 장에 탈이 나는 증상이 생긴다. 대장염( 잦은 설사. 변비).궤양( 위나 십이지 장애) 편두통( 구토를 동반한 두통) 고혈압.천식.피부병등이 생긴다. 또 전염병이 생긴다. 스트레스는 몸안에 있는 면역체계를 약화시킴으로 전염병에 감염될 확률이 많다.. 심장병의 위험이 높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들은 피의 저밀도 콜레스톨의 수준을 높이는데 이것은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이 막히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하여 혈관이 막히면 심방마비와 다른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또 행동장애가 생겨 적응성이 상실되어 담배를 많이 피우거나 음식을 많이 먹거나 적게 먹는 현상이 생긴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감정적인 요인이 암을 일으키기 쉽다.감정을 억누르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에 걸리기 쉽다. 또 정신적인 질환을 앓을수 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는가?

감정이 문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톤은 천성적으로 개구쟁이였다. 이런 워싱턴을 어머니는 여러 차례주의를 주었다
“ 조지.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법을 배우렴.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에서 처했을때 쉽게 무너지고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될거야”
워싱턴은 이렇게 대답했다
“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어쩔수 없는 때도 있거든요”
어머니는 다시 말했다
“천천히 변하면 돼 . 나는 내가 반드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단다”

워싱턴은 간혹 불같은 성격이 나오기도 했지만 점점 자제하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는 워싱턴이 스스로의 감정을 절재하고 바른 말과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곁에서 많은 도움울 주었다.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행동할 때 정직. 성실 .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감정이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릴때는 그의 도래에게 인기가 많앗다. 친구들은 그에게 중재자의 역할을 맡겼고 그의 결정을 믿고 따랐다. 또래사이에서 일찍이 대장과 법관의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은 경험에 대한 해석의 표현이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감정은 실체가 없다. 감정이란 어떤 사건에 대한 이해의 표현이며 행동과 문화적으로 연결된 언어이고 경험한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예를 들면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다”는 감정적인 표현을 하는데 이것은 한국인이 의미를 부여하여 이름지어인 것이다. 이성으로 보면 분명히 뜨거운 것이지만 감정으로 표현될때는 시원하다는 말로 느낌을 표현한다. 감정은 고통이라는 개체가 있는 것이 아닌 해석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감정은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이런면에서 감정은 생각에 속한 또 다른 영역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면서 아울러 감정을 가진 존재다. 사람에게는 동물이 가지지 못한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이 있다. 만약 사람에게 이런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주 삭막할 것이다. 생각만 있고 감정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잔인한 모습일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생기가 돌고 윤기가 나며 따스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감정 때문이다. 감정 역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 즐거워 하는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롬12:15)
성경은 인간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나사렛 죽음을 보고 또 예루살렘 성을 보고 슬퍼하시면서 우셨다


감정은 생각과 몸에서 나온다


사람에게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감정은 생각을 통해서 머리 속에 들어오는 소재에 대해서 반응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끌리게 하든지 아니면 등을 돌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어떤 대상을 보거나 환경을 대할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느끼게 된다. 그것이 감정이다. 부정적이든지 아니면 긍정적이든지 또 무반응 이든지 어떤 형태로든지 감정이 나타난다. 감정이 있으면서 우리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감정은 우리의 마음과 몸에 관련된 복잡한 반응이다. 물론 이런 감정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분노와 불안과 사랑과 즐거움을 느끼는 내적인 모습이다. 또 달아나거나 공격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충동의 행동적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감정이 나타날때는 신체에 변화가 일어난다. 심장 박동이 증가하거나 혈압이 증가하고 얼굴색이 변하는 것이다. 자세와 몸짓과 얼굴 표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 나타난다. 우리가 느끼고 있고 마음에 품고 평소에 생각하는 것을 이런 감정을 통하여 표출하며 다른 사람에게 믿게 한다. 이렇게 보면 감정은 또 다른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모습이다 . 감정속에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현재의 숨은 상태를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문제는 이런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대처하고 행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거나 대처를 못하면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긴다. 감정에 대해서 우리가 반응할 때 나쁜 대처방안 보다는 좋은 대처 방안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생각과 감정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호 의존적이며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 생각 없는 감정 없다. 또 감정 없는 생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둘은 함께 공존하기에 눈에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혹자는 생각을 감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 있기에 정확하게 이 둘을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해적인 측면에서 감정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사람이 흔히 느끼는 분노.슬픔. 기쁨은 어떻게 생길까? 여기에는 두가지 학설이 있다. 캐논과 버드가 제시하는 학설은 사람은 슬프기 때문에 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와 덴마크 생리학자 랑게는 울기 때문에 슬프다고 말한다. 생리적. 신체적 반응이 선행한다는 것이다.


감정과 이성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


고대 그리스로부터 서구 세계에 이르는 수천년 동안 감정은 예측 불가능한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즉 감정은 동물적인 속성이라고 보면서 무시를 했다. 이성을 중시하는 시대속에서 살아왔고 감정에 대한 것은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속성으로 치부하면서 경시를 했다. 그동안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분리시키며 대립의 구도로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감정적인 사람에 대해서 이성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저차원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감정은 늘 이성에 의존하고 있고 생각이나 이성 없이는 감정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감정은 우리가 생각하며 해석하는 삶의 방식이다. 감정은 언제나 평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감정( emotion)은 고대 그리스 말로는 passion 이다. 요즈음은 emotion 과 passion로 대체 하면서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은 이성에 감정을 종속시키면서 경기했다. 동물은 감정에 의존하고 인간은 이성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원시상태인 감정을 억제하는 길은 이성을 최고로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에게는 본시 감정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것을 이분화시키면서 감정과 이성을 분리했다. 감정과 이성을 대립의 관계로 보면서 서로 적대시했고 감정자체를 규제하는 모습으로까지 나갔다. 함부로 웃거나 슬퍼하는 것을 금지하고 죄악시까지 했다. 이런 잘못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다. 고대와 중세에 나타난 이성중심의 세계에서 18세기와 19세기초의 낭만주의시대가 들어서면서 이성을 감정에 종속시키는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과학에 대한 강조가 강해지면서 이성적인 면이 다시 강조되었다. 이것은 18세기에 일어났던 고전적이고 합리적인 것의 재확인이라 할 수 있다.
이성과 감정의 이런 지배의 사이클은 서로 뒤바뀌면서 반복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요즈음은 그동안의 이성와 지식중심으로 치우신 모습에서 벗어나 감정중심의 시대로 잠차 방향이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감정중심으로 나아갈때는 또 그동안 경험했던 반복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그러나 감정과 이성은 통합되어 있다.감정과 이성을 분리하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처사다. 감정을 유발한 것도 결국 이성에서 나온 것이고 감정을 통제하는 것도 이성에서 결정된다. 감정은 추론의 패턴에 의해서 일어난다. 사람의 행동이 밖으로 나타난 것은 이미 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안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감정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


또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감정은 인간안에 있는 생물학적 조건과도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속에 있는 생물학적 물질에 이상현상이 생기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감정이 표출이 되고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마음과 생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에 생물학적 구성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과 이성은 모두 뇌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대뇌 피질은 뇌 가운데서도 주로 추상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영역으로 예견. 계획. 삶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전력들을 가능하게 한다. 대내피질의 전두엽은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감정은 뇌 뿐 아니라 생리적인 것에도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감정적으로 흥분할때는 우리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몸에는 자율신경계가 있는데 이것은 다시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으로 나눈다. 이 두신경은 우리의 간정에 중요한 관계가 있다. 이 둘은 어느 한쪽 활동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적으로 활동할 때 내분비선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이 나온다. 아드레 날린과 노르아르데날린의 호르몬이 나온다. 감정의 첫신호가 나타날 때 교감신경계의 자극에 의해 이 호르몬이 분비된다. 감정이 일어나면 이 호르몬들은 빠른 속도로 피속으로 뿜어 진다. 이 호르몬들은 급격한 흥분이나 신경 과민을 느끼게 하며 교감신경계와 매우 흡사한 방법으로 우리의 몸에 영향을 준다. 즉 혈압이 올라가면서 심장 박동이 빨라 지며 피는 위나 창자와 같은 내장에서 손이나 몸의 큰 근육으로 옮겨진다. 호르몬이 혈관속으로 너무 많이 분비되거나 우리 몸에 너무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세포 조직에 손상을 주어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몸속에 분비되는 호르몬이 이상이 생기면 신경계에 문제를 주어 우울증이 생기거나 생각하지 않은 이상한 감정이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심각한 감정의 장애가 올때는 정신과에서 약을 통하여 치료하는데 이런 생물학적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때 나타나는 증세라 할수 있다.

이처럼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생각과 마음 뿐 아니라 환경와 문화와 더 나아가 생물학적 요소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어느 하나만으로 해결이 안되고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감정이 표출되는 이처럼 생각과 몸에도 관련이 있기에 감정을 잘 조절하면 역시 생각과 몸에 유익을 준다.

유대인 두뇌교육의 6가지 비결


유대인을 탁월하게 한 것은 생활속에서 체득된 두뇌교육에 있다



유대인은 세계적으로 머리가 좋기로 유명하다. 그것은 원래 유대인이 두뇌가 좋은 것이 아니고 두뇌를 많이 쓰게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아인슈타인, 만드는 영화마다 히트하는 흥행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통점은? 바로 유태인이라는 것이다. 한 세기를 움직인 천재들이 같은 민족이라면 그 민족의 교육법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 이스라엘에 천재가 많은 이유 노벨상 수상자 3백여 명 중 1백여 명이 유태인일 정도로 유태인은 머리가 좋은 민족으로 소문이 나 있다. 이는 이스라엘에서는 ‘머리가 좋아지는’ 교육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머리를 사용하는 교육을 하는지 탈무드에 나오는 것을 중심으로 영재를 만드는 사고훈련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배움은 꿀처럼 달콤하다


우리는 공부하면 일단 지겨워 한다. 어릴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만 정작 공부를 즐거워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공부가 재미있다는 전제가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부를 지겨워도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중간과정으로 이해를 한다. 공부가 대학가는 거싱 목표가 된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는 끝이다. 거기에 즐거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 즐거운 공부를 한 경험이 적다. 그러나 유대인은 다르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즐겁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학교를 그 어떤 곳보다 재밌고 즐거운 곳으로 만들고 있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한 아이들은 첫날 ‘배움의 달콤함’을 몸으로 배우는 의식을 치른다. 선생님이 신입생들을 앞에 두고 꿀로 알파벳을 써주면 아이들은 그걸 핥아먹는다. 그러면서 아이는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달콤한 것임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할까? 우리는 대학 들어갈때까지만….하지만 유대인들은 꿀처럼 달게 느껴질때 까지다. 일단 공부의 자세가 긍정적이다. 그런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히 머리가 발달한다. 머리가 발달 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생활화 하고 그것이 즐거워야 한다. 공부를 지겨워 하면 머리가 발달하기 어렵다. 두뇌가 발달 하기 위해서는 공부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몸이 아닌 머리를 써라


머리를 많이 쓰면 쓸수록 머리가 발달한다. 머리를 가만히 두면 발달이 안된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 하면 두뇌에 자극이 없기에 두뇌는 자연히 발달이 약하다. 쉽게 답을 가르쳐 주기 보다는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답을 스스로 찾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스라엘식 육아법을 보면 머리가 좋게 태어났다기보다 머리가 좋아지도록 키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아이들이 머리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학교나 가정의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유태인답게 사는 것은 몸보다 머리를 써서 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머리를 쓰게 한다고 여러 가지 책을 보게 하거나 수학문제를 풀게 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어디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는지 어떤 특별한 창의성이 있는지 어떤 잠재력을 품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해서 그 쪽을 계발시키기 위해 꾸준히 지도한다.

우리아이들의 많이 행하는 학습지를 보면 빠른 시간에 답을 얼마나 많이 푸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속도에 맞추어져 있다. 마치 답달기 달인을 만드는 것 처럼 학습지 구조가 되어 있다. 학교 시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생각을 발달 시키는 것 보다 원하는 답을 찾아내는데 초점을 두는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은 아이들을 세상 속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풀어놓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직접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열린 사고구조를 가지게 한다.


물고기를 주기보다 낚는 방법을 가르쳐라


이스라엘인은 아이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학문을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주입식이 아닌 아이들에게 원리를 찾고 응용력을 길러주는 학습법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숙제를 낼 때도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게 해 다시 맞추게 한다.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은 평범하다. 어려운 방법이 아닌 우리가 늘 일상생활에서 행하고 있는 방법이다. 부모는 아이와 대화하고, 같이 놀아주고 밤마다 책을 읽어주면서 교육한다. 교사도 학생들에게 쪽집게 과외처럼 답을 맞추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 문제의 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교사보다 학생들이 많이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마지막에 남는 그것을 찾아 교육한다. 이렇게 자기방법을 찾는 교육은 당장 보면 힘들고 답답하지만 그런 과정이 곧 머리를 발달하게 한다. 어릴때부터 이런 시스템으로 하다 보면 자연히 머리가 좋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머리를 좋게 하는 것은 단시간에 이루는 것이 아닌 어릴때부터 교육의 구조가 됨으로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다. 이렇게 보면 유대인에게 천재는 우리처럼 어릴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나이가 들어서 나타난다. 천재란 타고난 어느 한사람이 아닌 스스로 공부하면서 모든 유대인이 천재가 되는 방법이다.


묻지 말고 연구하라


유대인들은 질문을 많이 하는 민족이다. 교육을 할 때도 보면 질문으로 해서 질문으로 끝이 날 정도로 질문이 많다. 답 보다 질문이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 보다 답이 더 많다. 그리고 유대인은 질문을 하면 교사가 쉽게 답해주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탈무드교육법에 보면 “묻지 말고 연구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묻는 것을 금한다는 말이 아니고 의문나면 공부하라는 것이다. 스스로 연구하여 스스로 답을 찾으라는 말이다. 유대인은 어지간해서 답을 금방 알려주지 않는다. 궁금하게 하고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하게 하는 것이 유대인의 교육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사가 답 해주기를 원한다. 편안하게 앉아서 답을 찾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쉽게 답만 찾는데 관심이 있다. 과정 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로는 머리가 발달이 안된다. 점수중심의 교육은 머리를 나쁘게 한다. 그러다 보니 머리를 사용하지 않게 되며 쉽게 문제를 풀려고 한다. 답을 빨리 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답을 풀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하는가 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과정은 자연스럽게 머리를 발달하게 하고 두뇌계발을 탁월하게 한다.


고난을 피하지 말고 즐겨라



유대인이 다른 민족과 다르게 머리를 쓸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있는데 어려운 환경과 고난이다. 유대인은 다른 민족과 다르게 많은 고난을 받은 민족이다. 아마 유대인처럼 고난을 당한 민족은 없을 정도로 수천년동안 수없는 고난을 당했다. 유대인이 거하는 이스라엘의 국토와 지형은 척박하다. 광야에 쓸모 없는 땅이 많다. 예루살렘도시는 평지가 아닌 산등성이에 건설이 되었다. 가나안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환경의 땅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들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듯이 담겨져 있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밭을 만들고 개간하여 모든 국토를 활용하고 있다. 어느것 하나 쉽게 이루어진 것이 없는 이스라엘의 환경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것이 유대인을 천재로 만드는 비결이었다. 보잘것 없는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 만한 작고 척박한 땅을 가졌고 그런 국토 마져도 다른 나라에 빼앗기고 포로로 70년을 보내고 떠돌이로 방랑하다가 600만명이나 되는 민족들이 죄 없이 대량학살이 이어지는 민족적 시련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저주였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인줄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유대인의 많은 고난은 결국 유대인을 생각하는 민족으로 만들었고 머리를 사용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런 척박한 곳에서 시련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머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머리만이 고난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머리를 사용하여 지혜를 얻고 두뇌를 계발하여 수많은 천재들을 길러내었다.

내가 이스라엘을 갔을때 이스라엘에서 십수년 거주했던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 유대인교육의 천재적인 비결이 무엇인가?” 그때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내가 이곳에 살면서 느낀것은 유대인의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우리와 거의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한가지 다른 점은 유대인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서 많은 고난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것은 고난은 끊이지 않는데 비결이 있지 않을까? ”

고난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고 머리가 우수한 민족이 되게 했다는 결론이다. 고난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 고난을 어떻게 이길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기 위해서 수많은 방법을 찾다 보니 자연적으로 머리가 발달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고난당한 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이었다. 우리에게도 이것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천재가 많이 나오고 두뇌계발이 달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수많은 세기의 천재들에게 유난히 고난이 많았던 것도 알고 보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평생동안 공부하라


유대인은 평생 공부하는 민족이다. 어느한 기간만 공부하는 것이 아닌 죽는 순간까지 공부한다. 이스라엘을 가보면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책을 손에 놓지 않고 탈무드를 공부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공부에 졸업이 없다. 이런 분위기가 온 국민을 책의 민족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책을 팔아 옷을 사지만 그들은 옷을 팔아서 책을 산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고 평생동안 공부하며 책을 가까이 하다 보니 머리가 발달 하며 머리가 좋은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공부란 학교를 졸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가득차 있다. 이런 사고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두뇌가 좋아지지 않는다. 유대인이 두뇌가 좋은 것은 그들을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가 두뇌가 탁월하다. 그런 어른들이 즐비하다. 그런속에서 머리가 대물림 되고 그런 분위기가 계속적으로 천재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자녀만 공부하고 부모는 공부를 안한다. 공부하는 부모속에서 공부하는 자녀가 나온다. 평생동안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 누구도 머리가 좋아진다.

“사람은 평생동안 배우게끔 만들어진 존재다“이것이 유대인들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이다.아무리 탁월한 사람이라도 배움을 중단하면 그순간 그동안 배운것을 다 잃게 된다. 유대인들은 배우기를 중단하는 것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 20년 배운것을 중단하면 2년이면 잊어버린다‘라는 말이 유대인에게 있다. 평생동한 하는 생애교육이 유대인을 머리가 좋은 백성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수천년동안 이어온 유대인의 교육은 어느 민족이 쉽게 따라갈수 없는 두뇌계발의 강점이다.


한국인의 K -PAP 은 우뇌형의 산물이다


우뇌형 사고에 익숙한 한국인 교육



한국인은 뇌의 구조상으로 볼 때 어떠할까? 한국인은 우뇌형이 많다고 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서양 사람은 왼쪽 이마가 크지만 동양인은 오른쪽 이마가 크다. 한국인은 70%가 오른쪽 이마가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보고를 한서대 조용진 교수가 밝히고 있다. 한국인은 우뇌 안정형이어서 왼쪽눈을 주로 쓰고 버스를 타도 왼쪽을 선호한다고 한다.

한국인의 민족성은 무속적인 심성이 그 바탕이 되고 있다. 한국인의 원초적인 심성은 무속인데 그것은 우뇌에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신명나게 놀고 춤추며 굿을 하는 오랜 종교적인 문화적인 습성은 한국인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심성이다. 일을 대충하고 어림잡아 감으로 하는 것, 따지기 싫어하고 그냥 넘어가고, 정을 중시하며 정에 쉽게 이끌리는 것. 어디를 가더라도 잘 적응하고 융통성과 유연성이 있다든지. 모방을 잘하고 손재주와 빠른 눈치와 속도가 빠른 역동성, 직관을 중시하는 것. 신들린 무당처럼 며칠동안 밤낮을 춤추고 노래해도 피곤한지 모르는 신바람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 모든 것은 우뇌형의 역할에 속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은 태생적으로 우뇌가 발달된 민족이라 할수 있다.


언어속에 있는 우뇌방식


우리 말 가운데 자주 쓰는 말이 있다.“ 감이 좋은데.. 아마 이번에 잘될 것 같아. 척보면 안다. 척하면 3천리.. 에이 기분이 찝찝해.. “등은 우뇌형의 특징이다.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밀어 부치기식 일이 잘 먹혀든다. 겁 없이 도전하는 특징 있다. 서울올림픽. 고속도로 건설등을 보면 겁 없이 도전하며 그것도 빠른 시간에 이루는 일이다. 한국인은 빨리 빨리 문화다. 박정희의 경제정책. 정주영의 현대건설 신화나 대우의 김우중의 밀어 붙히는 도전의식 같은 것이 우뇌형에서 오는 특징이다. 분명하게 따져 보고 분석한후에 합리적이면 시행하는 외국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 못하는 일이다.


젓가락 문화는 우뇌발달에 좋다


한국인에게 또 하나 강점중에 한국형 문화는 세계 어디에 놓아도 손색이 없다. 

기능경시대회를 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그런 의미에서 컴퓨터와 핸드폰과 인터넷등이 세계강국으로 떠 오르는 것도 알고 보면 국민의 손재주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인은 어디서나 잘 적응한다. 그런 이유로 세계어디든지 가서 자리를 잡는다. 세계지구촌에 한국인이 없는 곳이 없다.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가며 정착을 잘한다. 상황 파악을 잘하기에 사는 것도 남들 못지 않게 잘산다. 눈치가 빠르고 일을 처리속도가 빠르다.축구의 응원전등을 보면 한국인의 특징을 금방 알수 있다. 집단적이고 전체적이다. 동양적인 사고와 서양적인 사고를 비교해 보면 비슷하다. 동양은 우뇌적인 사고를 하고 서양은 좌뇌적인 사고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동양에 속한 한국인은 우뇌형이다.


한국인 교육이 어느날 좌뇌가 지배했다


그동안 서양 문화가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함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많은 면에서 서양적인 좌뇌가 지배를 했다. 특히 교육계에서 활동하는 주류가 서양에서 공부를 한 좌뇌형의 사람들이다. 그런 때문에 교육구조와 방법이 거의 서구형으로 되어 있다. 100여년의 짧은 기간임에도 한국교육의 전반을 서구식으로 바꾼 것은 대단한 힘이다. 그러나 이런 서구형의 교육방법이 좌뇌형 교육으로 나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요즈음은 그것의 한계를 느끼면서 새로운 돌파구인 우뇌형의 교육법이 호응을 얻고 전차 우뇌형으로 돌아서고 있다. 물론 좌뇌형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너무나 좌뇌형으로 치우신 것을 반성하며 우뇌방법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한국인은 서구의 좌뇌교육법이 들어오기전 오래전부터 우뇌형이 발전되어 있었다.

대다수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대화를 많이 하는 우뇌에 익숙한 국민이다. 유교의 양반의 권위적인 정치에 억눌려 대다수의 백성들이 가진 우뇌형의 특징은 힘을 쓰지 못하고 쉬쉬하면서 숨어 지냈던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서구식의 교육방법이 들어오면서 더욱더 동양적인 우뇌의 한국인의 특징이 억눌려 교육적으로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밀려있었다. 이것은 서구의 좌뇌식의 철학적이며 주지주의적인 방법이 오랫동안 인류의 대세였던 우뇌식의 방법을 무시하게 되었다. 좌뇌형이 지배계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어느날 우뇌식 방법이 수면으로 들어가 버린 것과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우뇌로 한국인 문화를 키우라



이제 한국사회는 그동안 잊혔던 우뇌형의 특징인 이야기의 힘의 위력을 점차 발휘하고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정서에 있었던 우뇌형의 저력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와 노래등을 통하여 아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의 힘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우뇌의 힘의 결과다. 1000만 관객의 흥행을 누리는 한국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한국은 100여년 동안 쌓아온 좌뇌형의 서구의 교육방법을 깊게 습득한 것이 더 강점으로 작용할수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우뇌형과 그동안 배운 좌내형의 방법을 통합하여 전뇌로 간다면 세계적으로 훌륭한 한국인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진짜공부로 100년 미래를 준비하라

“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법을 배우라” – 임마누엘 칸트 –

– 임마누엘 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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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공무는 이제 그만하자

흔히 교육은 20년 이상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교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교육의 현실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데 급급하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시대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긴 안목을 갖고 키우지 못하면 나중에 황당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지금 열심히 자녀를 키웠는데 미래에 별 사용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대부분 공부를 인공 지능이 대신한다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교육을 제대로 진단하고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쳇봇등이 안방을 점령하고 교육의 모든 영역까지 밀려들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교육과 공부도 혁신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미래는 지금 잘 나가는 의사와 약사 같은 전문 직업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모든 정보와 자료는 인터넷에 공유됨으로 어떤 지식을 특정한 사람이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시대를 이끌어 갈까? 그것은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것은 아무리 인공 지능 시대가 발달해도 대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앞으로 단순 업무는 모두 AI와 기계가 처리 할 것이다. 하지만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은 AI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해결력과 창의력은 인공 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가진 고유 영역이다. 기존의 교육구조와 공부법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응답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 자녀들에게 미래를 대응하는 공부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시대적 도전에 응답하는 공부법을 한국 부모들에게 제시한다.

공부 비결은 내용보다 방법에 있다

미래는 공부의 내용보다 공부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분별하고 숨어 있는 본질을 찾는 능력을 터득하는 것이 앞으로 공부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제는 평생 공부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우리공부는 학교공부에 집중했다. 공부법 역시 학과목을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으로는 앞으로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오늘 우리에게 아직 그것을 위한 마땅한 공부법이 없는 실정이다.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공부를 하자

우리 아이 미래시대는 지금과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미래를 이기는 길은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아닌 주어진 문제를 파악하고 변하지 않는 동선을 잡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혜를 얻는데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대와 예기치 않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관건이다. 그 핵심은 문제해결력과 창의력이다. 만약 우리 자녀들이 이것만 터득한다면 세상 어디에 내 놓아도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졌느냐 보다 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이 주된 핵심이다.

이 블로그가 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블로그를 통하여 한국교육과 자녀의 공부에 변화가 일어날 뿐 아니라 깊고도 넓은 공부법을 체득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 자녀들이 학교공부를 넘어 수많은 인생의 문제까지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성인들과 부모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맞는 공부법을 대대로 전수 된다면 한국의 고질병인 사교육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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