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감정에 사로잡힐 때 생기는 2가지 문제


잘못된 감정에 사로잡힐 때 유의해야 할 2가지 문제



스트레스



현대에 가장 무서운 것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다양한 환경속에서 그것을 이겨나가기 위해 다양한 부담감을 느끼는데 그것의 불균형 현상이 생길때 나타난다. 환경에 대하여 대체능력이 약해지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스트레스에는 생리적 스트레스와 심리적 스트레스가 있다. 생리적 스트레스는 과다한 부과의 요구로 우리 몸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예를 들면 힘이 들때는 땀을 많이 흘리고 피로를 느끼며 심장 박동이 빠르고 혈압이 증가한다. 현기증이 생기고 두통이 일어난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피속에 품어지면서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더위와 추위에 적응이 안될때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때는 적절한 휴식과 회복이 필요하다.심리적 스트레스는 마음에서 오는 분노.불안,공포. 질투와 시기와 욕심등으로 신체적 부담에서 오는 형상들이 몸에 나타난다. 물론 이 둘은 같이 일어나기도 한다.이러한 스트레스는 감정과 관계가 있다. 스트레스는 주로 나쁜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정신적인 병인 스트레스에 민감하면 소화불량.복통. 위장장애. 장에 탈이 나는 증상이 생긴다. 대장염( 잦은 설사. 변비).궤양( 위나 십이지 장애) 편두통( 구토를 동반한 두통) 고혈압.천식.피부병등이 생긴다. 또 전염병이 생긴다. 스트레스는 몸안에 있는 면역체계를 약화시킴으로 전염병에 감염될 확률이 많다.. 심장병의 위험이 높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정들은 피의 저밀도 콜레스톨의 수준을 높이는데 이것은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이 막히는 원인이 된다. 이렇게 하여 혈관이 막히면 심방마비와 다른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또 행동장애가 생겨 적응성이 상실되어 담배를 많이 피우거나 음식을 많이 먹거나 적게 먹는 현상이 생긴다.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 감정적인 요인이 암을 일으키기 쉽다.감정을 억누르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암에 걸리기 쉽다. 또 정신적인 질환을 앓을수 있다.

나는 나의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는가?

감정이 문제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톤은 천성적으로 개구쟁이였다. 이런 워싱턴을 어머니는 여러 차례주의를 주었다
“ 조지.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는 법을 배우렴.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에서 처했을때 쉽게 무너지고 결국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될거야”
워싱턴은 이렇게 대답했다
“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어쩔수 없는 때도 있거든요”
어머니는 다시 말했다
“천천히 변하면 돼 . 나는 내가 반드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는단다”

워싱턴은 간혹 불같은 성격이 나오기도 했지만 점점 자제하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는 워싱턴이 스스로의 감정을 절재하고 바른 말과 행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곁에서 많은 도움울 주었다. 이런 어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행동할 때 정직. 성실 .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감정이 치우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어릴때는 그의 도래에게 인기가 많앗다. 친구들은 그에게 중재자의 역할을 맡겼고 그의 결정을 믿고 따랐다. 또래사이에서 일찍이 대장과 법관의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감정은 경험에 대한 해석의 표현이다


감정이란 무엇인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감정은 실체가 없다. 감정이란 어떤 사건에 대한 이해의 표현이며 행동과 문화적으로 연결된 언어이고 경험한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예를 들면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다”는 감정적인 표현을 하는데 이것은 한국인이 의미를 부여하여 이름지어인 것이다. 이성으로 보면 분명히 뜨거운 것이지만 감정으로 표현될때는 시원하다는 말로 느낌을 표현한다. 감정은 고통이라는 개체가 있는 것이 아닌 해석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감정은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이런면에서 감정은 생각에 속한 또 다른 영역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면서 아울러 감정을 가진 존재다. 사람에게는 동물이 가지지 못한 기뻐하고 슬퍼하는 감정이 있다. 만약 사람에게 이런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주 삭막할 것이다. 생각만 있고 감정이 없다면 그 사람은 잔인한 모습일 것이다. 사람을 만나면 생기가 돌고 윤기가 나며 따스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인간이 가진 감정 때문이다. 감정 역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생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 즐거워 하는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롬12:15)
성경은 인간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죄악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나사렛 죽음을 보고 또 예루살렘 성을 보고 슬퍼하시면서 우셨다


감정은 생각과 몸에서 나온다


사람에게 감정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감정은 생각을 통해서 머리 속에 들어오는 소재에 대해서 반응을 하는 것을 말한다. 즉 끌리게 하든지 아니면 등을 돌리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어떤 대상을 보거나 환경을 대할 때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느끼게 된다. 그것이 감정이다. 부정적이든지 아니면 긍정적이든지 또 무반응 이든지 어떤 형태로든지 감정이 나타난다. 감정이 있으면서 우리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감정은 우리의 마음과 몸에 관련된 복잡한 반응이다. 물론 이런 감정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분노와 불안과 사랑과 즐거움을 느끼는 내적인 모습이다. 또 달아나거나 공격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충동의 행동적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감정이 나타날때는 신체에 변화가 일어난다. 심장 박동이 증가하거나 혈압이 증가하고 얼굴색이 변하는 것이다. 자세와 몸짓과 얼굴 표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감정이 나타난다. 우리가 느끼고 있고 마음에 품고 평소에 생각하는 것을 이런 감정을 통하여 표출하며 다른 사람에게 믿게 한다. 이렇게 보면 감정은 또 다른 우리의 생각과 마음의 모습이다 . 감정속에는 자기만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현재의 숨은 상태를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문제는 이런 감정에 대해서 어떻게 우리가 대처하고 행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거나 대처를 못하면 여러 가지 상황이 생긴다. 감정에 대해서 우리가 반응할 때 나쁜 대처방안 보다는 좋은 대처 방안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생각과 감정은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상호 의존적이며 절대로 분리되지 않는다. 생각 없는 감정 없다. 또 감정 없는 생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둘은 함께 공존하기에 눈에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혹자는 생각을 감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서로 긴밀히 영향을 주고 있기에 정확하게 이 둘을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해적인 측면에서 감정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사람이 흔히 느끼는 분노.슬픔. 기쁨은 어떻게 생길까? 여기에는 두가지 학설이 있다. 캐논과 버드가 제시하는 학설은 사람은 슬프기 때문에 운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의 심리학자 제임스와 덴마크 생리학자 랑게는 울기 때문에 슬프다고 말한다. 생리적. 신체적 반응이 선행한다는 것이다.


감정과 이성에 대한 역사적 이야기


고대 그리스로부터 서구 세계에 이르는 수천년 동안 감정은 예측 불가능한 통제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즉 감정은 동물적인 속성이라고 보면서 무시를 했다. 이성을 중시하는 시대속에서 살아왔고 감정에 대한 것은 원시적이고 동물적인 속성으로 치부하면서 경시를 했다. 그동안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분리시키며 대립의 구도로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감정적인 사람에 대해서 이성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며 저차원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감정은 늘 이성에 의존하고 있고 생각이나 이성 없이는 감정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감정은 우리가 생각하며 해석하는 삶의 방식이다. 감정은 언제나 평가를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감정( emotion)은 고대 그리스 말로는 passion 이다. 요즈음은 emotion 과 passion로 대체 하면서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은 이성에 감정을 종속시키면서 경기했다. 동물은 감정에 의존하고 인간은 이성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원시상태인 감정을 억제하는 길은 이성을 최고로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인간에게는 본시 감정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것을 이분화시키면서 감정과 이성을 분리했다. 감정과 이성을 대립의 관계로 보면서 서로 적대시했고 감정자체를 규제하는 모습으로까지 나갔다. 함부로 웃거나 슬퍼하는 것을 금지하고 죄악시까지 했다. 이런 잘못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미치고 있다. 고대와 중세에 나타난 이성중심의 세계에서 18세기와 19세기초의 낭만주의시대가 들어서면서 이성을 감정에 종속시키는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과학에 대한 강조가 강해지면서 이성적인 면이 다시 강조되었다. 이것은 18세기에 일어났던 고전적이고 합리적인 것의 재확인이라 할 수 있다.
이성과 감정의 이런 지배의 사이클은 서로 뒤바뀌면서 반복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요즈음은 그동안의 이성와 지식중심으로 치우신 모습에서 벗어나 감정중심의 시대로 잠차 방향이 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너무 감정중심으로 나아갈때는 또 그동안 경험했던 반복적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그러나 감정과 이성은 통합되어 있다.감정과 이성을 분리하는 것은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처사다. 감정을 유발한 것도 결국 이성에서 나온 것이고 감정을 통제하는 것도 이성에서 결정된다. 감정은 추론의 패턴에 의해서 일어난다. 사람의 행동이 밖으로 나타난 것은 이미 속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안에 있는 것을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감정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


또 하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감정은 인간안에 있는 생물학적 조건과도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인간속에 있는 생물학적 물질에 이상현상이 생기면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감정이 표출이 되고 전혀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마음과 생각으로 통제가 불가능하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감정에 생물학적 구성요소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과 이성은 모두 뇌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대뇌 피질은 뇌 가운데서도 주로 추상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영역으로 예견. 계획. 삶의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전력들을 가능하게 한다. 대내피질의 전두엽은 감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감정은 뇌 뿐 아니라 생리적인 것에도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감정적으로 흥분할때는 우리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 몸에는 자율신경계가 있는데 이것은 다시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으로 나눈다. 이 두신경은 우리의 간정에 중요한 관계가 있다. 이 둘은 어느 한쪽 활동을 억제하는 경향이 있다. 감정적으로 활동할 때 내분비선에서 분비하는 호르몬이 나온다. 아드레 날린과 노르아르데날린의 호르몬이 나온다. 감정의 첫신호가 나타날 때 교감신경계의 자극에 의해 이 호르몬이 분비된다. 감정이 일어나면 이 호르몬들은 빠른 속도로 피속으로 뿜어 진다. 이 호르몬들은 급격한 흥분이나 신경 과민을 느끼게 하며 교감신경계와 매우 흡사한 방법으로 우리의 몸에 영향을 준다. 즉 혈압이 올라가면서 심장 박동이 빨라 지며 피는 위나 창자와 같은 내장에서 손이나 몸의 큰 근육으로 옮겨진다. 호르몬이 혈관속으로 너무 많이 분비되거나 우리 몸에 너무 오랫동안 남아 있으면 세포 조직에 손상을 주어 스트레스 장애가 생기기도 한다. 몸속에 분비되는 호르몬이 이상이 생기면 신경계에 문제를 주어 우울증이 생기거나 생각하지 않은 이상한 감정이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심각한 감정의 장애가 올때는 정신과에서 약을 통하여 치료하는데 이런 생물학적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때 나타나는 증세라 할수 있다.

이처럼 감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생각과 마음 뿐 아니라 환경와 문화와 더 나아가 생물학적 요소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어느 하나만으로 해결이 안되고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감정이 표출되는 이처럼 생각과 몸에도 관련이 있기에 감정을 잘 조절하면 역시 생각과 몸에 유익을 준다.

유대인 두뇌교육의 6가지 비결


유대인을 탁월하게 한 것은 생활속에서 체득된 두뇌교육에 있다



유대인은 세계적으로 머리가 좋기로 유명하다. 그것은 원래 유대인이 두뇌가 좋은 것이 아니고 두뇌를 많이 쓰게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아인슈타인, 만드는 영화마다 히트하는 흥행의 귀재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통점은? 바로 유태인이라는 것이다. 한 세기를 움직인 천재들이 같은 민족이라면 그 민족의 교육법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노벨상 수상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민족 이스라엘에 천재가 많은 이유 노벨상 수상자 3백여 명 중 1백여 명이 유태인일 정도로 유태인은 머리가 좋은 민족으로 소문이 나 있다. 이는 이스라엘에서는 ‘머리가 좋아지는’ 교육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어떻게 머리를 사용하는 교육을 하는지 탈무드에 나오는 것을 중심으로 영재를 만드는 사고훈련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배움은 꿀처럼 달콤하다


우리는 공부하면 일단 지겨워 한다. 어릴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만 정작 공부를 즐거워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공부가 재미있다는 전제가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부를 지겨워도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는 중간과정으로 이해를 한다. 공부가 대학가는 거싱 목표가 된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는 끝이다. 거기에 즐거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학생들과 교사들 모두 즐거운 공부를 한 경험이 적다. 그러나 유대인은 다르다. 이스라엘에서는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즐겁다고 가르친다. 그래서 학교를 그 어떤 곳보다 재밌고 즐거운 곳으로 만들고 있다.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한 아이들은 첫날 ‘배움의 달콤함’을 몸으로 배우는 의식을 치른다. 선생님이 신입생들을 앞에 두고 꿀로 알파벳을 써주면 아이들은 그걸 핥아먹는다. 그러면서 아이는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달콤한 것임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공부는 언제까지 해야 할까? 우리는 대학 들어갈때까지만….하지만 유대인들은 꿀처럼 달게 느껴질때 까지다. 일단 공부의 자세가 긍정적이다. 그런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히 머리가 발달한다. 머리가 발달 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생활화 하고 그것이 즐거워야 한다. 공부를 지겨워 하면 머리가 발달하기 어렵다. 두뇌가 발달 하기 위해서는 공부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몸이 아닌 머리를 써라


머리를 많이 쓰면 쓸수록 머리가 발달한다. 머리를 가만히 두면 발달이 안된다.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 하면 두뇌에 자극이 없기에 두뇌는 자연히 발달이 약하다. 쉽게 답을 가르쳐 주기 보다는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답을 스스로 찾게 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스라엘식 육아법을 보면 머리가 좋게 태어났다기보다 머리가 좋아지도록 키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아이들이 머리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학교나 가정의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유태인답게 사는 것은 몸보다 머리를 써서 사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렇다고 머리를 쓰게 한다고 여러 가지 책을 보게 하거나 수학문제를 풀게 하는 건 아니다. 아이가 어디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는지 어떤 특별한 창의성이 있는지 어떤 잠재력을 품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관찰해서 그 쪽을 계발시키기 위해 꾸준히 지도한다.

우리아이들의 많이 행하는 학습지를 보면 빠른 시간에 답을 얼마나 많이 푸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속도에 맞추어져 있다. 마치 답달기 달인을 만드는 것 처럼 학습지 구조가 되어 있다. 학교 시험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생각을 발달 시키는 것 보다 원하는 답을 찾아내는데 초점을 두는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대인은 아이들을 세상 속에 지극히 자연스럽게 풀어놓고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직접 느끼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 열린 사고구조를 가지게 한다.


물고기를 주기보다 낚는 방법을 가르쳐라


이스라엘인은 아이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학문을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 주입식이 아닌 아이들에게 원리를 찾고 응용력을 길러주는 학습법을 택하고 있다. 그래서 숙제를 낼 때도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게 해 다시 맞추게 한다. 이스라엘 교육의 핵심은 평범하다. 어려운 방법이 아닌 우리가 늘 일상생활에서 행하고 있는 방법이다. 부모는 아이와 대화하고, 같이 놀아주고 밤마다 책을 읽어주면서 교육한다. 교사도 학생들에게 쪽집게 과외처럼 답을 맞추는 비결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과 대화를 하면서 스스로 문제의 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교사보다 학생들이 많이 질문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 방법을 터득하게 한다. 마지막에 남는 그것을 찾아 교육한다. 이렇게 자기방법을 찾는 교육은 당장 보면 힘들고 답답하지만 그런 과정이 곧 머리를 발달하게 한다. 어릴때부터 이런 시스템으로 하다 보면 자연히 머리가 좋을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머리를 좋게 하는 것은 단시간에 이루는 것이 아닌 어릴때부터 교육의 구조가 됨으로 장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다. 이렇게 보면 유대인에게 천재는 우리처럼 어릴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나이가 들어서 나타난다. 천재란 타고난 어느 한사람이 아닌 스스로 공부하면서 모든 유대인이 천재가 되는 방법이다.


묻지 말고 연구하라


유대인들은 질문을 많이 하는 민족이다. 교육을 할 때도 보면 질문으로 해서 질문으로 끝이 날 정도로 질문이 많다. 답 보다 질문이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질문 보다 답이 더 많다. 그리고 유대인은 질문을 하면 교사가 쉽게 답해주지 않는다. 유대인들의 탈무드교육법에 보면 “묻지 말고 연구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묻는 것을 금한다는 말이 아니고 의문나면 공부하라는 것이다. 스스로 연구하여 스스로 답을 찾으라는 말이다. 유대인은 어지간해서 답을 금방 알려주지 않는다. 궁금하게 하고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하게 하는 것이 유대인의 교육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사가 답 해주기를 원한다. 편안하게 앉아서 답을 찾는 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공부를 하지 않고 쉽게 답만 찾는데 관심이 있다. 과정 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로는 머리가 발달이 안된다. 점수중심의 교육은 머리를 나쁘게 한다. 그러다 보니 머리를 사용하지 않게 되며 쉽게 문제를 풀려고 한다. 답을 빨리 푸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답을 풀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하는가 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과정은 자연스럽게 머리를 발달하게 하고 두뇌계발을 탁월하게 한다.


고난을 피하지 말고 즐겨라



유대인이 다른 민족과 다르게 머리를 쓸수 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있는데 어려운 환경과 고난이다. 유대인은 다른 민족과 다르게 많은 고난을 받은 민족이다. 아마 유대인처럼 고난을 당한 민족은 없을 정도로 수천년동안 수없는 고난을 당했다. 유대인이 거하는 이스라엘의 국토와 지형은 척박하다. 광야에 쓸모 없는 땅이 많다. 예루살렘도시는 평지가 아닌 산등성이에 건설이 되었다. 가나안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지만 알고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환경의 땅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만들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듯이 담겨져 있다. 물이 없는 사막에서 밭을 만들고 개간하여 모든 국토를 활용하고 있다. 어느것 하나 쉽게 이루어진 것이 없는 이스라엘의 환경이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것이 유대인을 천재로 만드는 비결이었다. 보잘것 없는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 만한 작고 척박한 땅을 가졌고 그런 국토 마져도 다른 나라에 빼앗기고 포로로 70년을 보내고 떠돌이로 방랑하다가 600만명이나 되는 민족들이 죄 없이 대량학살이 이어지는 민족적 시련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저주였다. 그러나 유대인은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인줄을 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유대인의 많은 고난은 결국 유대인을 생각하는 민족으로 만들었고 머리를 사용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런 척박한 곳에서 시련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머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대안이 나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머리만이 고난을 이기는 유일한 길이다. 머리를 사용하여 지혜를 얻고 두뇌를 계발하여 수많은 천재들을 길러내었다.

내가 이스라엘을 갔을때 이스라엘에서 십수년 거주했던 친구에게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 유대인교육의 천재적인 비결이 무엇인가?” 그때 그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내가 이곳에 살면서 느낀것은 유대인의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우리와 거의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한가지 다른 점은 유대인 민족이 다른 민족에 비해서 많은 고난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것은 고난은 끊이지 않는데 비결이 있지 않을까? ”

고난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고 머리가 우수한 민족이 되게 했다는 결론이다. 고난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그 고난을 어떻게 이길수 있을까 고민하며 살기 위해서 수많은 방법을 찾다 보니 자연적으로 머리가 발달 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고난당한 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이었다. 우리에게도 이것은 그대로 적용된다고 본다. 어려운 환경속에서 천재가 많이 나오고 두뇌계발이 달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나에게도 가능성이 있다. 수많은 세기의 천재들에게 유난히 고난이 많았던 것도 알고 보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평생동안 공부하라


유대인은 평생 공부하는 민족이다. 어느한 기간만 공부하는 것이 아닌 죽는 순간까지 공부한다. 이스라엘을 가보면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책을 손에 놓지 않고 탈무드를 공부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공부에 졸업이 없다. 이런 분위기가 온 국민을 책의 민족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책을 팔아 옷을 사지만 그들은 옷을 팔아서 책을 산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고 평생동안 공부하며 책을 가까이 하다 보니 머리가 발달 하며 머리가 좋은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공부란 학교를 졸업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가득차 있다. 이런 사고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두뇌가 좋아지지 않는다. 유대인이 두뇌가 좋은 것은 그들을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가 두뇌가 탁월하다. 그런 어른들이 즐비하다. 그런속에서 머리가 대물림 되고 그런 분위기가 계속적으로 천재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자녀만 공부하고 부모는 공부를 안한다. 공부하는 부모속에서 공부하는 자녀가 나온다. 평생동안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 누구도 머리가 좋아진다.

“사람은 평생동안 배우게끔 만들어진 존재다“이것이 유대인들이 가진 기본적인 생각이다.아무리 탁월한 사람이라도 배움을 중단하면 그순간 그동안 배운것을 다 잃게 된다. 유대인들은 배우기를 중단하는 것은 곧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 20년 배운것을 중단하면 2년이면 잊어버린다‘라는 말이 유대인에게 있다. 평생동한 하는 생애교육이 유대인을 머리가 좋은 백성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수천년동안 이어온 유대인의 교육은 어느 민족이 쉽게 따라갈수 없는 두뇌계발의 강점이다.


한국인의 K -PAP 은 우뇌형의 산물이다


우뇌형 사고에 익숙한 한국인 교육



한국인은 뇌의 구조상으로 볼 때 어떠할까? 한국인은 우뇌형이 많다고 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서양 사람은 왼쪽 이마가 크지만 동양인은 오른쪽 이마가 크다. 한국인은 70%가 오른쪽 이마가 세계에서 제일 크다는 보고를 한서대 조용진 교수가 밝히고 있다. 한국인은 우뇌 안정형이어서 왼쪽눈을 주로 쓰고 버스를 타도 왼쪽을 선호한다고 한다.

한국인의 민족성은 무속적인 심성이 그 바탕이 되고 있다. 한국인의 원초적인 심성은 무속인데 그것은 우뇌에 관계가 있다. 예를 들면 신명나게 놀고 춤추며 굿을 하는 오랜 종교적인 문화적인 습성은 한국인에게 보편적으로 있는 심성이다. 일을 대충하고 어림잡아 감으로 하는 것, 따지기 싫어하고 그냥 넘어가고, 정을 중시하며 정에 쉽게 이끌리는 것. 어디를 가더라도 잘 적응하고 융통성과 유연성이 있다든지. 모방을 잘하고 손재주와 빠른 눈치와 속도가 빠른 역동성, 직관을 중시하는 것. 신들린 무당처럼 며칠동안 밤낮을 춤추고 노래해도 피곤한지 모르는 신바람은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징이다. 이 모든 것은 우뇌형의 역할에 속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은 태생적으로 우뇌가 발달된 민족이라 할수 있다.


언어속에 있는 우뇌방식


우리 말 가운데 자주 쓰는 말이 있다.“ 감이 좋은데.. 아마 이번에 잘될 것 같아. 척보면 안다. 척하면 3천리.. 에이 기분이 찝찝해.. “등은 우뇌형의 특징이다.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밀어 부치기식 일이 잘 먹혀든다. 겁 없이 도전하는 특징 있다. 서울올림픽. 고속도로 건설등을 보면 겁 없이 도전하며 그것도 빠른 시간에 이루는 일이다. 한국인은 빨리 빨리 문화다. 박정희의 경제정책. 정주영의 현대건설 신화나 대우의 김우중의 밀어 붙히는 도전의식 같은 것이 우뇌형에서 오는 특징이다. 분명하게 따져 보고 분석한후에 합리적이면 시행하는 외국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 못하는 일이다.


젓가락 문화는 우뇌발달에 좋다


한국인에게 또 하나 강점중에 한국형 문화는 세계 어디에 놓아도 손색이 없다. 

기능경시대회를 늘 1위를 차지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그런 의미에서 컴퓨터와 핸드폰과 인터넷등이 세계강국으로 떠 오르는 것도 알고 보면 국민의 손재주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인은 어디서나 잘 적응한다. 그런 이유로 세계어디든지 가서 자리를 잡는다. 세계지구촌에 한국인이 없는 곳이 없다.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가며 정착을 잘한다. 상황 파악을 잘하기에 사는 것도 남들 못지 않게 잘산다. 눈치가 빠르고 일을 처리속도가 빠르다.축구의 응원전등을 보면 한국인의 특징을 금방 알수 있다. 집단적이고 전체적이다. 동양적인 사고와 서양적인 사고를 비교해 보면 비슷하다. 동양은 우뇌적인 사고를 하고 서양은 좌뇌적인 사고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동양에 속한 한국인은 우뇌형이다.


한국인 교육이 어느날 좌뇌가 지배했다


그동안 서양 문화가 한국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함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많은 면에서 서양적인 좌뇌가 지배를 했다. 특히 교육계에서 활동하는 주류가 서양에서 공부를 한 좌뇌형의 사람들이다. 그런 때문에 교육구조와 방법이 거의 서구형으로 되어 있다. 100여년의 짧은 기간임에도 한국교육의 전반을 서구식으로 바꾼 것은 대단한 힘이다. 그러나 이런 서구형의 교육방법이 좌뇌형 교육으로 나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요즈음은 그것의 한계를 느끼면서 새로운 돌파구인 우뇌형의 교육법이 호응을 얻고 전차 우뇌형으로 돌아서고 있다. 물론 좌뇌형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너무나 좌뇌형으로 치우신 것을 반성하며 우뇌방법를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한국인은 서구의 좌뇌교육법이 들어오기전 오래전부터 우뇌형이 발전되어 있었다.

대다수 백성들은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며 대화를 많이 하는 우뇌에 익숙한 국민이다. 유교의 양반의 권위적인 정치에 억눌려 대다수의 백성들이 가진 우뇌형의 특징은 힘을 쓰지 못하고 쉬쉬하면서 숨어 지냈던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서구식의 교육방법이 들어오면서 더욱더 동양적인 우뇌의 한국인의 특징이 억눌려 교육적으로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밀려있었다. 이것은 서구의 좌뇌식의 철학적이며 주지주의적인 방법이 오랫동안 인류의 대세였던 우뇌식의 방법을 무시하게 되었다. 좌뇌형이 지배계층으로 자리 잡으면서 어느날 우뇌식 방법이 수면으로 들어가 버린 것과 같은 상황이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났다.


우뇌로 한국인 문화를 키우라



이제 한국사회는 그동안 잊혔던 우뇌형의 특징인 이야기의 힘의 위력을 점차 발휘하고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정서에 있었던 우뇌형의 저력이라 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와 노래등을 통하여 아시아에 불고 있는 한류의 힘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던 우뇌의 힘의 결과다. 1000만 관객의 흥행을 누리는 한국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라 할 수 있다. 오히려 한국은 100여년 동안 쌓아온 좌뇌형의 서구의 교육방법을 깊게 습득한 것이 더 강점으로 작용할수 있다. 이미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우뇌형과 그동안 배운 좌내형의 방법을 통합하여 전뇌로 간다면 세계적으로 훌륭한 한국인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다.

왜 우리가 유대인 교육을 주목해야 하는가?

유대인 교육은 원리에 따른 교육이다


유대인이 교육의 민족으로 세계에서 두각을 발휘하게 된 근본 이유는 방법이 아닌 원리에 있다. 그들은 교육의 교과서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수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교육교과서인 토라와 탈무드가 있다. 탈무드 역시 성경을 원리로 하여 만든 교육서이다. 유대인의 모든 교육은 이것을 근간으로 한다. 물론 학교 뿐 아니라 가정도 마찬가지이다. 토라는 모세오경으로 이야기와 가르침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이 누구인지,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 주는 가르침의 책이다. 토라는 본래 권위적인 가르침, 지침을 가리킨다. 우리로 말하면 길. 도(道)라는 뜻이다. 토라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말씀이 쉐마다. 쉐마는 ‘들으라’는 의미로 신명기 6;4-9까지 내용이다.

이것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째,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해야 할 도리는 하나님을 전인적으로 사랑하는 일이다. 셋째,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과 자신의 자녀에게 해야 할 도리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다. 유대인 교육은 이 세 가지를 원리로 해서 교육과정이 구성되었다. 쉐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아침과 저녁으로 반복하여 이 말씀을 암송한다. 그들은 평생 동안 쉐마를 통하여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기억하면서 교육에 임한다. 유대인의 모든 공부와 교육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시적이고 실용적인 교육 보다 인간의 도리를 먼저 가르치고 그것을 삶에 적용한다. 방법은 변하지만 원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유대인 교육은 원리에 충실한 교육이다.


토라(성경)는 모든 교육의 원리다


교육은 창조적인 작업이다. 인간이 교육을 받으면 창조적인 사람이 된다. 이것이 인간에게 교육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러나 인간의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에 근거를 둔 재창조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서 출발한다.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모든 지식들은 알고 보면 하나님의 창조에서 재발견된 것들이다. 만약 하나님을 모른다면 그 교육은 헛된 것이 된다. 뿌리 없는 교육이 될 수 밖에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가 기록된 책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역사는 하나님이 이끌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가 기록된 책이 성경이다. 세상의 모든 원리는 성경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은 모든 교육의 원리가 된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의 책 이상이다. 사람들은 성경을 종교적인 경전정도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교육의 교과서로 사용하는 것을 꺼린다. 그러나 세상과 인간의 뿌리를 알려면 성경은 필수적이다. 성경 속에는 어느 책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세상과 인생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을 교육 원리로 근간을 삼으라


성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로 안내한다. 진리를 공부하는 것은 교육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성경이 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사상이나 철학이 교육의 주체가 되면 안된다. 사상이나 철학이 주도하면 인간의 인성 보다는 철학과 사상으로 만들어진 이념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세상과 사람은 본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말씀으로 창조된 사람의 변화는 오직 말씀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이 모든 교육의 시작이 성경이 시작점이 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말씀은 히브리어로 ‘다바르(dabar)’ 이다. 이 뜻은 “나중에 있는 것을 이전으로 쫓아내고 몰아버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바르’는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 행위적인 것을 포함한다. 또 ‘다바르’ 는 “창조능력”, “사건”이라는 의미와 함께 “ 모든 것의 근원” 이라는 뜻도 포함된다. 창조의 힘은 곧 말씀입니다. 말씀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성경을 뿌리로 삼는 것은 교육의 시작을 하나님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을 뿌리로 하는 교육


일반교육은 성경이 아닌 자연을 뿌리를 두고 있다. 자연은 물질이다. 그들은 인간을 자연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한다. 일반 교육에서 자연은 인간 보다 늘 앞서 있다. 예를 들면 우주와 물질을 모든 것의 근원으로 보고 교육을 한다. 인간은 자연의 부산물로 본다. 그러나 자연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아무도 밝히지 못한다. 빅뱅 이전의 일에는 침묵하고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은 자연을 모든 것의 시작으로 보고 가르친다. 어떤 경우는 자연을 신이라고 말한다. 고대부터 신을 해.달,별등과 관련시켜 이해한 것도 이런 맥락과 같이 한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연의 지배속에 있었다. 인간이 동물보다는 고등하지만 늘 자연 보다는 한수 아래로 본다. 이것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의 기본 틀이다. 이런 교육론은 루소의 <에밀>의 영향에 따른 것이다.


에밀의 교육론의 문제점


지금도 루소의 교육론은 우리 교육론의 근간이 되고 있는 명저다. 하나의 소설형식으로 쓴 <에밀>은 교육론이다. 그는 여기서 자연. 사물. 인간의 세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자연의 교육‘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가장 자유롭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이 불행하게 된 것은 사회나 제도와 문화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보았고 이것을 교육에 적용했다. 그러나 루소는 인간의 본질을 잘 못 이해했다. 루소는 인간의 죄악의 원인을 인간이 자연에서 떠난 것으로 보았다. 이런 그의 가설은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인간이 타락하고 부패한 것은 자연을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의 죄악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루소의 한계는 어쩌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에게 죄가 들어 온 것은 인간이 스스로 근원임을 주장한 교만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교만함은 모든 인간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일반교육에서 사용하는 자연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자연은 이러한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겸손하게 자기를 깨닫는 어느 정도 완화의 기능은 할 수 있지만 인간의 본질적인 마음의 죄를 해결할 수 없다. 인간이 산속에 들어가서 산다고 해서 인간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다. 산속에 있을 때는 조금 완화가 되는 듯하지만 세상에 내려오면 그 본성은 어느새 다시 나타난다. 이것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볼 때도 문제성 있는 교육 이론이다. 종종 사람들은 루소의 자연 교육론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이런 교육론을 주창한 루소 본인 자신조차도 실상 자녀를 고아원에 보내는 등 실패한 교육을 했다. 루소의 비인간적인 이중성은 그의 사생활에서 드러났다. 많은 여성들과 동거하면서 결혼생활은 실패했다. 만년에는 피해망상증으로 괴로워 하다가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본인에게 숨겨진 죄악성을 해결하지 못했다. 자연이 그를 성적인 욕망에서 자유롭게 해주지 못했다. 그가 주장한 교육론은 인성에서는 실패한 교육 이론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루소의 교육론은 인간의 부패한 마음과 욕망을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악한 지, 루소 스스로 후대의 사람들에게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 이런 허상과 같은 교육론을 우리는 여전히 교육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교육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근원은 해결되지 않고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토라 성경을 뿌리로 하는 원형교육이 필요하다


성경은 세상에서 밝히지 못하는 자연의 근원을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자연은 말씀으로 만들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 창1:3) 그동안 세상 교육에서 배웠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자연 보다 말씀이 먼저다.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인간은 자연 보다 나중에 창조되었지만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연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부여받았다. 동물들의 이름을 아담이 지었다. 자연을 하나님의 섭리대로 관리하고 정복하는 것은 인간의 사명이다. 자연 보다 인간이 우위에 있다. 그리고 그 위에 하나님이 있다.


교육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인간을 어떤 구조로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 본래 가졌던 세상의 원형을 회복해야 한다. 창조질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에 따라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다. 뿌리 없는 잘못된 교육이 인간을 지배하면 교육은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오히려 이런 교육은 교육을 할수록 점차 인성이 말라가고 허무한 삶이 된다. 이런 면에서 성경을 근거로 한 교육구조의 전환은 아주 시급하다.


한 대안학교의 가르침에서 배운 경험


필자는 오랫동안 섬겼던 기독 대안학교를 돌아 보면 다른 대안학교와 비슷한 구조로 교육과정이 설정되었다. 물론 세상의 교육 보다는 우수한 부분이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문제에서 볼때는 부족함이 많다. 예를 들면 학교의 가장 중요한 목표를 ‘성경을 기초로 하는 교육’을 말하고 있다. 세부내용을 보면 “ 인간관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타락 후 구원받아야 할 존재이다. 지식관 –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교육관 – 교육의 기준, 방법과 원리를 성경에서 찾는다“ 로 되어 있다. 교육의 전체가 철저히 성경중심을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다른 학교와 차별이 되는 분명 우수한 점이다.

그러나 정말 교육의 뿌리가 성경이라면 철저히 성경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아직 명확한 교육관의 정립이 부족함을 보게 된다. 목표는 성경중심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에서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성경의 중요성에 대해서 아직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생각은 있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는 한계점이다. 이것은 다른 기독대안학교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교육은 뿌리를 어떻게 구축하느냐가 중요하다 – 한국교육의 가장 큰 약점


철저히 성경이 이끄는 교육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저학년에서는 성경의 학습량이 월등히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다. 다른 과목과 비슷한 수준에서 성경을 배우고 있다. 중학교의 경우를 보면 일주일에 성경 과목은 2시간이 배정 되었다. 사실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게 되면 성경은 여전히 절대적인 과목이 아닌 상대적인 과목으로 존재하고 있다. 미션스쿨에서 마치 종교과목으로 하나 들어 가 있는 것과 같다. 이것으로는 삶의 뿌리를 세우는데 부족하다. 정말 교육의 뿌리가 성경이라는 확신이 든다면 철저히 성경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에 성경의 시간을 더 늘리거나 오전에는 성경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오후에 일반 과목을 배우는 교과과정의 과감한 전환이 요구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릴적 부터 성경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갑자기 중. 고등학교에서 성경교육을 강화 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다. 이때만 되면 학생들은 벌써 대학공부 준비 때문에 차분히 성경을 공부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성경으로 학과목도 해결된다면 – 유대인 예시바학교가 잘 적용 하고 있다



사실 성경을 배운다는 것이 모든 학문의 기초를 성경을 통해 이미 숙달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성경을 배우면서 영어와 국어의 논술과 토론과 쓰기와 읽기. 그리고 역사와 사회 등의 과목이 자연스럽게 터득할 수 있다)
물론 경험이 안 된 상황에서는 과연 그것이 현실에서 얼마나 설득력이 있게 교사와 학생과 부모들이 이해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어려움이 있다. 현실적으로 제도권의 교육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방편으로서 교육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한 번도 시도하지 못했기에 이런 교육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은 한번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오랫동안 유대인 예시바 학교에서 이미 검증이 되고 있는 사례이기에 우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의 신학교육의 문제점


이것은 신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작은 신학교까지 합치면 200여개 학교가 된다. 교단의 대표적인 신학교를 살펴보아도 이런 현상은 쉽게 알 수 있다. 적어도 학부 1-2학년에는 성경을 철저히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그것을 기초로 다른 학문들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되고 있다. 신학교 조차도 성경은 많은 학문들 중에 하나로 존재한다. 실용적인 학문이 점차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신학의 뿌리인 성경은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당연히 신학교육은 기초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신학교 역시 일반학교와 거의 비슷한 형태로 나가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영적 지도자가 될 사람이 만약 신학교에서 성경을 잘 배우지 못하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성경을 공부해야 하는 역현상은 오늘 우리 신앙교육의 현주소를 그대로 말해 준다.


유대인 교육의 원리를 적용하라


세상의 변하지 않는 가치를 붙잡는 유대인의 교육을 우리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유대인은 진리에 근거한 교육이기에 어떤 유행과 풍파가 닥쳐도 변함 없이 교육의 틀을 유지할 수 있다. 오늘 우리도 이런 변하지 않는 교육의 구조가 요구된다. 학교나 가정에서 이런 교육의 틀을 가진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가문의 영광의 길이 열린 것이다.

진짜공부로 100년 미래를 준비하라

“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하는 법을 배우라” – 임마누엘 칸트 –

– 임마누엘 칸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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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없는 공무는 이제 그만하자

흔히 교육은 20년 이상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교육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고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한국교육의 현실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데 급급하다. 그러나 이제는 이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시대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를 긴 안목을 갖고 키우지 못하면 나중에 황당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만약 지금 열심히 자녀를 키웠는데 미래에 별 사용가치가 없는 것이라면

대부분 공부를 인공 지능이 대신한다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이런 일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교육을 제대로 진단하고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지금 세계는 4차 산업혁명시대로 접어들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쳇봇등이 안방을 점령하고 교육의 모든 영역까지 밀려들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교육과 공부도 혁신적인 변화가 요구된다. 미래는 지금 잘 나가는 의사와 약사 같은 전문 직업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모든 정보와 자료는 인터넷에 공유됨으로 어떤 지식을 특정한 사람이 독점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은 인간에게만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떤 사람이 시대를 이끌어 갈까? 그것은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것은 아무리 인공 지능 시대가 발달해도 대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앞으로 단순 업무는 모두 AI와 기계가 처리 할 것이다. 하지만 창의력과 문제해결력은 AI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문제해결력과 창의력은 인공 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오직 인간만이 가진 고유 영역이다. 기존의 교육구조와 공부법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응답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 자녀들에게 미래를 대응하는 공부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시대적 도전에 응답하는 공부법을 한국 부모들에게 제시한다.

공부 비결은 내용보다 방법에 있다

미래는 공부의 내용보다 공부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을 분별하고 숨어 있는 본질을 찾는 능력을 터득하는 것이 앞으로 공부의 핵심이 될 것이다. 이제는 평생 공부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우리공부는 학교공부에 집중했다. 공부법 역시 학과목을 올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것으로는 앞으로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오늘 우리에게 아직 그것을 위한 마땅한 공부법이 없는 실정이다.

문제해결능력을 키우는 공부를 하자

우리 아이 미래시대는 지금과 판이하게 다를 것이다. 아직까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미래를 이기는 길은 지식과 정보의 습득이 아닌 주어진 문제를 파악하고 변하지 않는 동선을 잡는 일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혜를 얻는데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대와 예기치 않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내는가가 관건이다. 그 핵심은 문제해결력과 창의력이다. 만약 우리 자녀들이 이것만 터득한다면 세상 어디에 내 놓아도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정보를 가졌느냐 보다 앞에 닥친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이 주된 핵심이다.

이 블로그가 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이 블로그를 통하여 한국교육과 자녀의 공부에 변화가 일어날 뿐 아니라 깊고도 넓은 공부법을 체득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우리 자녀들이 학교공부를 넘어 수많은 인생의 문제까지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성인들과 부모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맞는 공부법을 대대로 전수 된다면 한국의 고질병인 사교육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시간속에서 절기와 명절과 기념일 통해 오감을 개발하라

절기에 숨어있는 공부의 비밀

우리공부는 주로 지식에 머문다. 그러다 보니 공부가 거의 책에 의존한다. 그러나 유대인의 공부는 특별하다. 전인적으로 공부한다. 유대인은 토라를 배울 때 책이나 지식적인 배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토라의 구절을 담은 작은 정사각형의 상자를 만들어 미간과 손목에 붙인다. 이것을 테필린이라고 말한다. 또 직사각형의 통속에 토라의 말씀을 넣어서 집의 문설주와 바깥문에 붙인다. 이것을 메주자라고 말한다. 이것은 토라에 기록된 미간과 손목과 문설주에 붙이는 명령의 지침을 그대로 따라서 실천한 것이다.

테필린 안은 4개의 방이 있는데 출애굽기13:1-10, 출애굽기 13:11-16과 신명기 6:11,16.신명기 11:13-21의 말씀이 들어 있다. 지금도 유대인은 이것을 사람의 몸에 붙이고 집 문설주에 붙인다. 그것은 집에 나가고 들어갈 때 보고 손에 대고 입맞춤을 한다. 또 몸에 테필린을 붙이고 외출을 한다. 이것은 머리와 손에 말씀을 새겨 넣는 것과 같은 시각적인 의미가 있다. 잊어버리지 않고 몸에 각인하기 위한 오감 교육방법이다.

명절을 통해 오감을 체험하라

유대인은 일년간에 절기가 계속 이어진다. 안식을 시작으로 거의 분기마다 유월절, 초막절. 대속죄일. 부림절. 하누카 절기 등 일년이 절기로 구성된다고 보면 된다. 유대인의 절기는 우리로 말하면 국가 명졀에 해당된다. 유대인은 절기에 온가족이 함께 지킨다. 보통 1주일간 계속된다. 그들은 이날을 공부의 날로 삼는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성경의 내용과 유대인 전통과 역사를 공부한다. 유대인 역사를 일년동안 절기를 지키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다.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닌 오감과 몸으로 공동체와 가족이 함께 체험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체득한다.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는 방법들은 자손 대대로 전수가 된다.

보이는 오감으로 보이지 않는 정체성을 체득하라

오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절기공부는 역사, 철학, 사상, 의식, 전통, 공동체와 민족성을 총체적으로 몸으로 배우게 한다. 모든 절기마다 까다로운 규칙이 있는데 그것을 아버지는 자녀에게 전수한다. 유대인은 절기를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부모에 대한 예의와 식탁 예절을 몸에 익힌다. 안식일은 촛불을 켜고 안식을 빵을 먹고 유월절 절기에 무교병과 소금과 쓴나물을 먹는다. 초막절은 나뭇잎으로 집 앞에 초막을 만들어 그곳에서 일주일간 가족이 지낸다

. 머리에 키파라는 작은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늘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며 늘 하나님 아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모자를 통해 몸에 체득한다.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8일째 되는 날에 할례를 행한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의 표피를 베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별된 사람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자는 평생 자신의 할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유대인임을 인식한다.

온몸으로 공부하는 유대인의 공부효과

정통 유대인들은 어린이까지 옷자락의 귀퉁이에 청색 끈을 만들어 부착하고 다닌다. 이 끈은 하나님의 법을 상징한다. 유대인은 자기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것을 이 끈을 통해 기억한다. 전통 명절인 부림절에는 성경 에스더에 나오는 악한 대적 하만을 상징하는 하만 만두라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하만을 이겼던 승리의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 또 유대인은 기도를 할 때 기도복을 입고 기도를 한다.

이것을 탈릿트라고 말하는데 탈릿트 끝에도 보면 끈들이 달려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상징한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백향목을 심고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소나무를 심는다. 나중에 자라서 결혼할 때 이 나무로 결혼식의 차양을 만든다. 아이가 자라서 성장하여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결혼식에서 유리컵을 깨는 순서가 반드시 들어간다. 즐거운 결혼식에 왜 유리컵을 깨는가?

첫째는 조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을 때에 성전이 허물어지고 역사가 실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고 둘째는 깨뜨려진 유리 조각들을 원상 복구할 수 없듯이 결혼도 물릴 수 없는 영원한 것임을 신랑과 신부가 다짐하기 위해서다.

오감을 열어 사람 몸에 흔적을 남겨라

유대인은 자녀를 교육할 때나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시청각 방법들을 생활 프로그램으로 적용한다. 그것은 교훈을 머리로만 아닌 실제로 몸에 체득하여 실천하기 위해서다. 수많은 의식과 상징을 통하면 잊어버리지 않게 되고 오랫동안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우리는 공부를 거의 책으로만 하지만 유대인은 오감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공부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오감을 동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지식은 오감을 통해 우리마음과 생각에 들어간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은 이런 원리를 교육에 잘 적용한다. 반면에 우리는 책을 보며 강의를 듣는 시각과 청각에만 의존한다. 당연히 오감을 의존하는 유대인 공부가 시각과 청각에만 우리 공부 보다 탁월할 수밖에 없다. 보고 듣는 것도 우리는 오직 책에만 의존하는 점에서 우리공부는 한계가 있다.

인생을 성공한 사람들의 숨은 비밀은 교육에 있다

이스라엘 유대광야에서 하룻밤을 지낸후에 저녁 황혼에 친구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멸망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다

애굽, 앗수르, 바벨론. 페르사, 헬라. 로마, 몽골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고대국가들이다. 그들은 모두 한때 대단한 영광을 누렸던 나라였지만, 다음 시대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역사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중요한 원인은 교육에 있다. 한 나라를 영원히 세우며 다음 세대까지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은 교육이다. 특히 다음 세대를 키우는 교육에 투자한 민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설사 땅이 사라진다 해도 민족은 건재 한다. 많은 고대 국가들이 사라졌지만 그 가운데 지금까지 유일하게 전통과 문화가 그대로 전수되고 있는 민족이 유대인이다, 유대인은 고대국가들 중에 가장 작은 나라였지만 그들과 싸움에서 멸망하지 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았는데 그 비결은 교육에 있다.

       0.2% 소수 민족 유대인이  세계 최강국이 된  비결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멸망되었을 때 유대인들은 로마의 힘이 아니라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잘못을 찾았다. 즉 잘못된 교육이 결국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교훈을 마음에 새긴 유대인은 그 이후에 교육에 민족의 운명을 걸었다. 그 결과 유대인은 지금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거듭났다. 오천년을 내려온 유대인 교육의 저력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들이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자녀 교육에 승부를 걸면서 다음 세대를 키워내는 일은 어느 민족 보다 열심이다. 이것은 오랫동안 어려움을 통해 얻은 지혜였다. 이스라엘의 의무 교육법에 의하면 5-16세까지 아이들은 의무교육을 받는다. 또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18세 이후라도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역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교육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스라엘은 GDP의 8%를 교육에 투자한다. 전쟁의 위험으로 군사비에 많은 지출을 하고 있음에도 이만한 교육비를 투자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평생 배우면 누구나 1인자가 될   수 있다

사람은 생활이 어려우면 가지고 있는 물건을 팔아서 생계를 꾸린다. 이때 유대인은 가장 먼저 처분하는 것이 금이고 그 다음은 집과 땅이다. 그리고 끝까지 남겨 두는 것은 책이다. 유대인에게 교육의 도구인 책은 생명과도 같다. 1736년 라트비아의 유대인은 법률을 정했는데, 그 법에 따르면 상대가 부탁했을 때 책을 빌려주지 않는 사람은 벌금에 처했다. 이것은 유대인은 얼마나 교육을 중시하는 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교육속에 인생 성공의 비밀이 숨어 있다. 우리가 정말 성공 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교육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평생 동안 배우면 누구나 자기만의 영역에서 1인자가 될 수 있다.

의미공부법 : 이유를 알면 공부가 즐겁다

이유 있는 공부 : 죽음과 고난을 이기는 비결이 있다

‘의미요법’을 창시한 정신과 의사이며 유대인이었던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에서 3년 동안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의 기간을 보냈다. 그는 수용소에서 수없이 죽어가는 수감자들을 보면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어도 단 한 가지를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주어진 어떠한 환경에 놓이더라도 자기의 태도를 선택하고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가 없으며, 이런 정신적 자유야말로 삶을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의미 있는 것을 창조하면서 그것을 위해 행동을 시도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갖고 희망을 꿈꾸었던 사람은 죽는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빅터 프랭클 자신도 이런 희망을 가지고 수용소에서 원고 쓰는 일을 게으르지 않았고 다른 동료들을 상담하며 격려하며 공부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비록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그 상황이었지만 공부를 계속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물론 그 의미에는 고통과 궁핍과 죽음도 포함된다.

빅터 프랭클을 가스실에의 죽음에서 구한 기적을 배우라

빅터 프랭클은 전쟁이 끝나 극적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풀려났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그는 그토록 소망했던 아내와 가족들이 모두 죽은 사실을 알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수용소에서부터 썼던 원고를 출판하고 90세까지 살면서 22권의 책을 더 저술했다. 그중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 깨달은 내용을 정리한 <삶의 의미를 찾아서> 는 천만부가 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가 한 번도 인생을 뒷걸음치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 갈수 있었던 이유는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배경은 유대인으로서 어릴 때부터 유대인의 공부가 삶에 배인 결과라 생각된다. 유대인은 수 천년 동안 많은 고난을 공부와 교육으로 이겨낸 민족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도 유대인 부모는 자녀들에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어떤 어려운 순간에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지금까지 유대인의 역사가 그것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고난을 이기는 순간 공부가 된다

사람은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지고 성장하기를 원한다. 또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노력한다. 그것을 이루는 비결은 공부다. 자기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서 공부는 필수적이다. 성공과 행복은 그냥 오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할 때 찾아온다. 무엇이든지 공부하지 않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꼭 학교 공부가 아니더라도 공부는 삶의 모든 곳에 적용된다. 가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래연습이 필요하다. 좋은 가정생활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정 구성원들이 공부에 힘쓰는 일은 필연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누구도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다. 공부 없이 행복은 오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는 만큼 행복은 찾아온다. 설사 공부를 통하여 당장 무엇을 얻지 못해도 이미 공부하는 그 자체가 행복이다.

100세를 잘사는 길은 공부에 달려 있다

예전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은퇴 이후에도 50여년 남짓 시간이 있다. 그렇다면 긴 기간 동안 인생의 의미를 가지고 마지막까지 지치지 않고 신나게 살 수 있는 길은 공부하는 일이다.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고 스스로 목적을 이루며 살 수 있는 길은 공부에 답이 있다. 현대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한 100세를 잘 살기 위해서는 공부는 필수다. 자기의 만족과 행복은 공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은 자아실현을 위해서, 어떤 사람은 더 높은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 공부를 한다. 이처럼 공부하는 목적은 사람마다 아주 다양하다. 공부를 학교 공부로만 고정시킬 수 없다. 공부는 모든 것을 이루는데 있어 필수다.

왜 사람들은 공부를 그렇게 싫어 할까?

그런데 왜 사람들은 공부를 그렇게도 싫어할까? 특히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 공부를 지겨워하는 사람이 많다. “공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항변할 정도로 공부는 학생들에게 큰 스트레스다. 하지만 공부는 학교를 졸업해도 인생에서 피할 수 없다. 어느 것도 공부 없이 되는 일은 없다. 그렇다면 공부를 즐기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아직도 그 방법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이것을 터득하지 못하면 평생 공부는 어렵다.

우리 주변에는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공부도 같이 그만둔 사람이 많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주로 공원이나 양로원에 가 있다. 그러나 유대인 노인들은 도서관에서 공부한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도서관에서 찾기 힘들다.

그러나 유대인 노인들은 흰머리와 수염이 가득함에도 탈무드 학교에 다니거나 탈무드를 공부하면서 하루를 지낸다. 손주들에게 탈무드를 가르치며 교육하는 모습은 흔한 일이다.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도 토라와 탈무드를 손에 놓지 않는다.

한국인에게 공부는 지겨운 일이 된 이유

우리는 ‘공부’ 말만 들어도 지겨워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겨운 공부라고 아예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왜 공부가 지겨운 것이 되었는가?” 가장 큰 이유는 공부를 단순히 학교 공부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공부는 많은 공부 중에 한 부분임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 학교공부는 거의 지적인 부분에 맞추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지적인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당연히 학교 공부가 힘들 수밖에 없다. 물론 지적 수순이 발달 된 사람은 학교 공부가 즐겁다. 그리고 주어진 과제들을 충분히 소화 해 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공부가 생각만 해도 힘들고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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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지적영역만 죽기까지 공부하는 이유는?

그것은 공부가 지적영역, 주로 국. 영. 수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이 과목들은 대학 수학 능력 고사에서 배점과 변별력이 가장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싫어도 국어. 영어. 수학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초, 중, 고등학교 긴 기간 동안에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과목이 국어. 영어. 수학이다.

고등학교의 과목 내용을 보면 그 수준은 상당히 높다. 어른들이 보아도 이해가 어렵다. 그것을 보면 과연 모든 학생이 이런 공부를 꼭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들 중에는 현실에서 적용될 수 없는 것이 많다. 어떤 것들은 평생 동안 사용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보면 거의 전공 수준에 가깝다. 과연 국. 영. 수의 이런 과목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10년 넘게 모든 학생들이 동일하게 시간을 바쳐야 하는가. 문교부가 정한 몇 과목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결정적 요인이 되는가.

그것으로 공부를 과연 평가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감이 든다. 심지어 그것으로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사회와 학교 분위기는 모두를 좌절하게 만든다. 이렇게 10년 정도 학교생활을 하면 학생들은 지칠수 밖에 없다.

변하지 않는 원리에 따른 4가지 공부법

01 , 어디서도 통하는 변하지 않는 우주의 법칙을 따라 공부하라

우주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우주를 살펴보면 법칙과 질서가 있고 그것에 따라 정확하게 움직인다. 한 치의 오차만 생겨도 우주는 불바다가 된다. 그것은 우주를 움직이고 지배하는 우주의 원리가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에도 원리가 있듯이 인간의 몸에도 원리가 있고 모든 생물과 식물과 자연 속에는 원리가 있다. 인간은 태초 이래로 정확한 원리에 따라 정교하게 움직이며 출생과 성장과 죽음을 거듭하고 있다. 원리는 시대가 지나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만약 상황과 시대에 따라 자꾸 변한다면 그것은 원리가 아니다.

02. 숨어 있는 자연질서속에서 원리를 찾으라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원리의 힘을 믿고 그 원리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자기 생각과 의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 원리를 자기의 삶에 적용하며 살아간다. 사람은 원리에 따라 살면 틀림없이 성공하게 되어 있다. 원리대로 사는 것은 곧 진리의 삶이다. 사람의 몸에 병이 나고 환경오염이 생기는 것은 자연의 원리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적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03. 원리에서 효과적인 공부 방법을 도출하라

교육도 원리를 찾아 그 원리대로 할 때 효과가 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그동안 원리 보다는 방법에 치중했다. 교육원리가 없는 교육이다 보니 모방에 그쳤고 창의적인 교육을 하지 못했다. 열심히 하는 만큼 효과가 적은 이유는 원리에 충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법은 언제나 원리에서 나와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결과와 실용성만 강조한 방법은 잠시 있다 사라진다. 방법은 수시로 변한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방법은 변신을 거듭한다. 그러나 원리는 변하지 않는 평생지침이다. 과학을 보면 이해가 된다. 과학은 나타난 현상 속에서 숨어 있는 원리를 찾는 것이다. 그 찾은 원리를 다시 생활에 응용하는 것이다. 과학은 이미 나타나는 결과와 방법들을 통해서 숨어 있는 원리를 찾는 것이다. 과학은 원리를 찾아내는 학문이이다. 나타난 현상에서 보이지 않는 원리를 찾아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원리와 방법은 상호적이다. 답이 함께 들어 있다. 이것은 원리와 방법이 일치해야 함을 의미한다.

04 공부잘하는 사람의 특징은 방법 보다 원리에 충실한다

교육에서 원리를 먼저 점검하여 바르게 정리가 된다면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교사, 부모, 학생, 자녀 모두가 이 원리를 알고 교육하는 것과 이것을 모르고 방법에만 매달려 당장의 결과만 추구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 원리에 충실하면 당장 결과가 없어도 언젠가는 결과가 맺힌다. 원리를 이해하면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교육을 할 수 있다. 우리의 교육이 단기적이며 교육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원인은 아직 교육의 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의 목표와 비전은 있는데 교육의 원리를 분명하게 잡지 못했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금이라도 원리를 충분히 숙지하고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 교육의 다양한 방법들을 찾는 다면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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